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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산성·고인돌·고분 등

수원 화성행궁 탐방과 무예24기 공연 관람

by 즐풍 2022. 6. 7.

2022_100

 

 

2022.6.2 (목) 10:45~11:55, 70분 탐방 (무예 24기 공연 포함)

 

 

차량 앞 유리가 살짝 금이 가 수원으로 복원하러 왔으나 너무 경미해 고칠 수 없다고 한다.

귀가하느니 수원 광교산 등산하기는 힘들고 귀찮단 생각에 수원화성으로 발길을 옮긴다.

수원화성을 탐방하던 중 화성행궁에서 11시부터 무예 24기 시범 공연을 한다는 안내문을 봤다.

무예 시범 공연을 보기 위해 화성장대에서 잠시 탐방을 멈추고 화성행궁으로 내려선다.

 

평일이라고 해도 무예 24기 시범 공연을 보려고 제법 많은 사람이 몰렸다.

공연을 막 시작할 무렵엔 유치원생 20여 명까지 더해져 공연은 제법 활기를 띤다.

언젠가 수원화성을 탐방하며 우연히 들렸던 행궁에서 진행하는 무예 공연을 조금 맛보기도 했다.

그때 전편을 보지 못 해 부족했던 갈증을 이번에 깨끗하게 해소한다.

 

 

 

□ 수원화성행궁 (사적 제478호)


수원화성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수원화성행궁’이다.
화성행궁은 임금님의 행차 시 거처하던 임시 궁궐로 모두 576칸이나 되는 국내 최대의 규모로서,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깃들어 있다.
정조는 1789년 10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옮긴 이후 1800년(정조 24년) 1월까지 

12년간 13차례에 걸쳐 수원행차를 거행했으며,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렀다.
1795년에는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하는 진찬연을 여는 등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하였다.
화성행궁은 평상시에는 화성유수부 유수가 집무하는 관청으로도 활용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후 갖가지 용도의 건물로 이용되면서, 그 모습을 잃게 되었다.
화성 축성 200주년인 1996년부터 복원 공사를 시작해 2003년 일반인에게 공개하였다.

                                                                                                             (출처_수원 관광)

 

무예 시범은 유여택 마당에서 펼쳐진다.

무예 시범을 보려면 성인은 행궁 입장료 1,500원을 내야 한다.

 

무예 24기는 정조대왕이 박제가, 이덕무, 백동수 등에게 편찬을 지시한 무예 훈련 교범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실린 무예를 선보이는 공연이다.

 

이 책에는 그동안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서 사용하였던 병기를 망라하여 소개하고

당시 새롭세 개발한 병기를 보충하였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나라 무예를 집대성한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

병기는 모두 24기(技)를 소개하였는데 칼, 창, 활 등 전통적 병기를 비롯하여 새로 도입된 왜검,

표창, 곤봉 등을 세밀한 도면을 덧붙여 설명해 놓았다.

특히 맨주먹으로 벌이는 무예인 권법과 말을 다루는 기예인 마상재를 상세히 다루었다.

이 책은 전투 기술을 중심으로 실전 훈련을 위한 교육용으로 편찬되었다.

                                                                              (출처_이이화의 한극사 이야기 중 일부)

 

4m 장창 시범이다.

탄력이 좋아 잘 휘는 성질을 이용해 장창을 잘 다뤄야 한다.

 

 

 

장창과 삼지창의 대결이다.

 

삼지창은 세 갈래로 벌어진 틈 사이로 장창을 넣고 제압한다.

 

장창은 크다는 이점은 있으나 탄력이 좋아 잘 휘므로 제어하기가 쉽지 않아 결국 삼지창에 굴복한다.

 

이번엔 언월도 무예 시범이 있다.

삼국지를 읽다 보면 관우가 휘두르는 청룡언월도에 대한 환상이 많을 것이다.

무예도보통지 제작에 참여한 백동수도 말 위에서 언월도를 귀신처럼 다뤘다고 한다.

실제 무예도보통지 속에 그려진 마상언월도 다루는 그림은 백동수로 추정한다.

 

이번엔 검의 대결

 

얍~, 얍~ 휘익~ 휙..

 

서로 많은 수련을 해 날카로운 검이 춤추듯 지나가지만 누구 하나 다치지 않는 멋진 시범을 보인다.

 

타아~~

 

 

 

 

 

 

 

이번엔 장검 시범이다.

 

장검은 크고 긴 만큼 힘과 기술이 좋아야 한다.

 

장검은 큰 만큼 대결 없이 단독으로 시범을 보인다.

 

다음은 등나무로 만든 방패로 몸을 보호하며 칼은 들고 장대를 든 사람과 대련을 한다.

 

등나무 방패는 가벼우며 탄성이 좋아 보이지만 일반적인 방패처럼 화살을 막아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자유자재로 방어하는 대련이 보기 좋다.

 

 

 

 

 

이번에는 짚 허수아비를 베는 시범을 보여준다.

 

검으로는 하나씩 세워진 짚더미를 단칼에 벤다.

 

몇 번의 동작으로 여러 번 요절을 낸다.

 

 

 

 

 

이번엔 대나무 자르기 시범

 

 

 

오른쪽 대나무도 분리된 채 그대로 수직 낙하하며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드디어 마지막 대미는 언월도로 10개의 집더미를 한 번에 쓸어버릴 심산이다.

 

기합 소리와 함께 두 동강 난 집더미가 후드득 거리며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했다.

 

강호의 아니 수원시립공연단의 고수가 그동안 갈고닦은 무예로 한 칼에 쓸어버렸다.

 

이런 장관을 놓칠 리 없는 축하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무예 24기 시범이 끝나자 무예 시범을 보였던 단월들이 각자의 무기를 다루는 기예를 한 번 더 보여준다.

 

아이들과 함께 가족이 동반해 관람하면 좋아하겠다.

 

화성행궁 안내도

 

 

□ 신풍루(新豊樓)


신풍루는 화성 행궁의 정문으로 1790(정조 14)에 누문 6칸을 세우고 진남루 (鎭南樓)라고 하였다.
1795년 정조는 신풍루로 고치라고 명하여 조윤형으로 하여금 다시 편액을 쓰게 하였다.
'신풍'이란 이름은 일찍이 한나라 고조가 '풍 땅은 새로운 또 하나의 고향'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조에게 있어 화성은 고향과 같은 고장이라는 의미로 편액을 걸게 한 것이다.

                                                                                                             (출처_수원 관광)

화성행궁은 신풍루를 들어가는 것으로 탐방을 시작한다.

 

 

□ 좌익문(左翊門)


좌익문은 중양문 앞에 있는데, '좌익은 곧 곁에서 돕는다'는 뜻으로 내삼문을 바로 앞에서 

도(道)와 행궁을 지키는 중삼문(中三門)이다.
1790년 완성되었고 편액은 정동준이 정조의 명을 받들어 썼다.
남쪽 행각의 끝은 외정리소와 연결되어 있다.

                                                                                (출처_수원 관광)

 

 

 

□ 유여택(維與宅)


유여택은 평상시에 화성유수가 거처하다가 정조가 행차 시에 잠시 머무르며 신하를 접견하는 건물이다.
유여택은 복내당 동쪽 행각과 외정리소 사이에 있다.
유여택이라는 이름은 『시경』 중에서 주나라 천명을 받아 나라를 크게 하고 집을 주었다는 데서 따온 것으로 

정조의 입장에서는 화성 유수를 임명하여 내려보내는 곳이라는 의미가 된다.

                                                                                                 (출처_수원 관광)

유여택 앞마당에서 무예 시번 공연이 진행된다.

 

 

□ 경룡관(景龍館)


경룡관은 장락당의 바깥문으로도 사용한 부속 건물이다. 

'경룡'이란 제왕을 상징하는 큰 용을 뜻하는 것으로 당태종이 거처한 궁궐 이름에서 따 왔다.
정조는 당태종의 궁궐 이름을 차용한 이 건물에서 휴식을 취하며 조선의 태평성세를 구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1794년(정조 18)에 세워진 경룡관을 2층 구조로 건물의 2층은 모두 마루를 깔아 누마루를 만들고, 

아래층은 3칸의 널문을 만들어 '지락 문(至樂門)'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출처_수원 관광)

 

행궁 뒤의 풍경

 

 

□ 봉수당(奉壽堂)


봉수당은 화성 행궁의 정전(正殿) 건물이자 화성 유수부의 동헌 건물로 장남헌 (壯南軒)이라고도 한다.
1795년(정조 19) 정조는 혜경궁의 회갑연 진찬례를 이 건물에서 거행하였다.
이때 정조는 혜경궁의 장수를 기원하며 '만년(萬年)의 수(壽)를 받들어 빈다'는 뜻의

봉수당이라는 당호를 지어 조윤형으로 하여금 현판을 쓰게 하였다.
이 건물은 원래 1789년(정조 13) 8월 19일 상량하고 9월 25일 완공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파괴된 봉수당은 1997년 복원되었다.

                                                                                                       (출처_수원 관광)

 

 

 

 

□ 중양문(中陽門)


‘양문은 궁궐 건축의 삼문 설치 형식에 따라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을 바로 앞에서 가로막아 

굳게 지키는 역할을 하는 내삼문(內三門)이다.
1790년(정조 14)에 완성되었으며, 중앙의 정문과 좌우의 우협문, 좌협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문 좌우로 긴 행각을 두어 출입을 통제하였다.
1795년 봉수당 진찬례 때 봉수당 앞으로는 정조와 혜경궁을 비롯한 왕실의 종친과 대신들이 자리하였고, 

중양문 밖으로 대문을 활짝 열어 승지와 사관, 각신이 반열을 이루었던 바 있다

                                                                                                     (출처_수원 관광)

 

□ 복내당(福內堂)


복내당은 행궁의 내당(內堂)으로 정조가 행차 시에 머물렀던 곳이며 장락당 남쪽에 위치하였다.
상량문은 1796년(정조 20) 11월 민종현이 지었다.
복내당의 이름은 '복은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원래 복내당은 1790년(정조 14)에 수원부 신읍치소의 내아(內衙)로 건립하였고, 1794년(정조 13)에 세웠다. 

좌우 두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_수원 관광)

 

□ 집사청(執事廳)


집사는 주인을 모시고 그 살림을 맡아하는 사람들로서 행궁의 집사청은 궁궐의 액정서(국왕이 쓰는 붓과 먹, 

벼루 등을 보관하며 대궐 안의 열쇠를 간수하고 여러 가지 설비, 비품을 관리하는 관청)와 같이 

잡다한 사무를 보던 집사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좌익문 밖 동북 담 안에 있는데 1789년(정조 13)에 세웠다. 

좌우 두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_수원 관광)

 

 

 

외정리아문(外整理衙門)

화성 행성에서 임금의 행차와 행사에 필요한 제반 비용을 관리하는 외정리소로 드나드는 출입문이다. 

 

 

□ 비장청(婢將廳)


비장은 관찰사나 절도사 등 지방관이 데리고 다니던 막료로 조선 후기에는 방어사를 겸한 수령까지 

모두 비장을 거느리는 것을 관례화하여 민정 염탐을 시키기도 하였다.
비장청은 화성 유수부의 비장들이 사용하던 건물로 외정리소 앞에 있는 남향 건물이다.
원래는 1789년(정조 13)에 세웠는데 1796년(정조 20)에 서리청 건물을 수리하고 비장청으로 변경하여 사용하였다.

                                                                                                              (출처_수원 관광)

 

 

 

□ 서리청(書吏廳)


서리는 문서의 기록 및 수령, 발급을 담당하는 아전으로서 서리청은 그들이 사용하는 건물이다.
비장청 앞에 위치했으며 남향이다.
예전의 금 도청(禁盜廳) 건물을 이청으로 쓰게 하고,

그 건물을 증축하여 사용하였으며 1795년 을묘원행시에는 수라간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출처_수원 관광)

 

 

□ 남군영(南軍營)


남군영은 장용외영의 기마병이었던 친군위(親軍衛)가 좌, 우열로 각 100명씩 입직 숙위 하는 건물이다.
신풍루 좌우에 있는데 1789년(정조 13)에 처음 지었고,

1794년(정조 18) 좌우를 증축하여 모두 62칸의 규모를 갖추었다.
1798년(정조 22) 장용외영 군영의 일대 개편에 따라 좌, 우열은 파하고

1,2,3번의 입번 순서를 정하여 매년 각 100명씩 양 군영에 나누어 배치하였다.

                                                                                                          (출처_수원 관광)

 

 

 

화성 행궁에서 진행된 무예 시범 관람 후 행궁을 두루 살펴봤다.

행궁 탐방을 끝내고 인근 식당에서 불고기로 식사를 하려고 했더니 2인분 이상만 식사가 가능하다기에

간단하게 식사를 끝내고 다시 화성 장대로 올라가 나머지 구간을 탐방했다.

 

 

차량 유리를 고친다고 수원에 올라오는 바람에 오늘 10시에 예약한 코로나 4차 백신 접종을 깜박했다.

일정 기간이 지나야 다시 예약할 수 있으니 당분간 기다려야 한다.

의도치 않은 화성 행궁의 무예 시범과 행궁을 탐방하는 기회를 가졌다.

수원 화성과 행궁은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다.

 

 

수원화성이 궁금하면...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과 방화수류정 탐방

2022_100 2022.6.2 (목) 09:15~14:50, 5시간 35분(점심, 무예 24기 관람 시간 포함) 운전하다 보면 앞차의 짐칸이나 바퀴에 끼었던 돌이 튀어 앞유리를 칠 때가 간혹 있다. 딱~ 소리를 내며 유리를 강타할 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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