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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산성·고인돌·고분 등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과 방화수류정 탐방

by 즐풍 2022. 6. 7.

2022_100

 

 

2022.6.2 (목)  09:15~14:50, 5시간 35분(점심, 무예 24기 관람 시간 포함)

 

 

운전하다 보면 앞차의 짐칸이나 바퀴에 끼었던 돌이 튀어 앞유리를 칠 때가 간혹 있다.

딱~ 소리를 내며 유리를 강타할 땐 정말 유리가 깨지고 말겠단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대부분 어디서 떨어졌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고, 안다고 해도 별 게 아니니 그냥 넘어간다.

언젠가 앞유리에 살짝 금이 간 게 보였는데, 세차하고 나니 없어져 거미줄을 닦아냈다고 생각했다.

웬걸 며칠 전 운전하는 데 그 자리에 햇빛이 비치자 프리즘 빛처럼 살짝 금이 간 게 보인다.

거미줄이 아니라 실금이 간 걸 이제야 제대로 알 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돌빵 자국이 큰 것도 아니고 약하게 난 흔적 세 개를 연결해 10cm 정도 금이 생겼다.

수원 모처에서 무료로 복원해준다는 데가 있어 예약 시간에 맞춰 갔더니 금을 못 찾는다.

복원할 때 접착제를 넣어 더 퍼지지 않게 하는 것인데, 접착제가 들어갈 틈도 없으니 복원할 수도 없다.

사정이 이러니 유리 업체를 나와 수원화성과 행궁을 한 바퀴 돌며 탐방에 나선다

 

 

 

□ 세계문화유산 역사적 가치 수원화성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사적 제3호)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 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 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 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정조 18년(1794년)에 축성 공사를 시작, 2년 뒤인 1796년에 완공했으며 정약용이 성을 설계하였습니다.
수원화성은 거중기, 활차, 녹로 등 신기재의 발명과 활용, 동서양 축성술을 집약한 축성방법 등 

18세기 과학과 건축, 예술을 살필 수 있는 대한민국 성곽 건축사상 가장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수원화성」은 방어 기능과 성벽 안에 갖추어진 4개의 성문을 비롯해 각기 다른 모양과 특성을 지닌 

건축물의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으뜸 관광 명소’, ‘CNN 선정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곳 50곳’, 

2012 한국관광을 빛낸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되는 등 한국 전통역사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출처_수원 관광)

 

 

□ 창룡문(蒼龍門)


창룡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동쪽 문으로 1795년(정조 19) 5월 8일 공사를 시작하여 10월 17일 마쳤다.
창룡은 곧 청룡으로 풍수지리상 좌청룡이며 동쪽을 의미한다.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반달 모양으로 쌓았는데 장안문, 팔달문과 달리 한쪽을 열어놓았다.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출처_수원 관광)

 

 

 

□ 수원화성

 

화성(華城)은 경기도 수원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성곽이다. 

정조(正祖)가 자신의 부친인 장헌세자의 묘를 옮기면서 읍치소를 이전하고 

주민을 이주시킬 수 있는 신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방어 목적으로 조성하였다. 

1794년 2월에 착공하여 2년 반에 걸친 공사 후 완공되었다. 

성곽 전체 길이는 5.74Km이며, 높이 4~6m의 성벽이 130㏊의 면적을 에워싸고 있다.


처음부터 계획되어 신축된 성곽이라는 점,

거주지로서의 읍성과 방어용 산성을 합하여 하나의 성곽도시로 만들었다는 점,

전통적인 축성 기법에 동양과 서양의 새로운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는 점,

그 이전의 우리나라 성곽에 흔치 않았던 다양한 방어용 시설이 많이 첨가되었다는 점,

주변 지형에 따라 자연스러운 형태로 조성해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는 점 등의 특징이 있다.

1801년에 간행된 화성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를 통해 공사의 자세한 전말을 알 수 있다.   

                                                                                                 (출처_유네스코와 유산)

 

맨 마지막에 다시 볼 동북공심돈

 

푸른 잔디에 무성한 초목을 보니 더 선명한 느낌이다.

 

화성은 안쪽 풍경보다 밖의 풍경이 더 멋지다.

화살이나 화승총을 쏠 때 아군의 피해가 없도록 담을 높이 쌓다.

 

□ 동이치(東二雉)


‘치(雉)’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이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잘 엿보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떠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동이치는 동포루(東砲樓)와 봉돈의 중간 지점에 있다.

                                                                                                  (출처_수원 관광)

봉돈의 공격형 구멍에서 보는 동이치

 

□ 동포루(東砲樓)

동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 동일치와 동이치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 (정조 20) 7월 16일에 완공되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로 치성의 발전된 형태이다.
화성의 포루는 모두 벽돌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공심돈과 같이 안을 비워 적을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공격할 수 있게 하였다.

                                                                                                 (출처_수원 관광)

뒤돌아 본 동포루

 

□ 동남각루(東南角樓)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건물이다.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 지휘소 역할도 하였다.
동남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성 안팎의 시야가 가장 넓은 곳이다.
남수문 방면의 방어를 위하여 남공심돈과 마주 보며 군사를 지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출처_수원 관광)

 

원래 지형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위 설명대로 남수문 방향의 방어를 위해 높이 쌓았는지 알 수 없다.

아래에 있는 수원천을 따라 북쪽엔 북수문(화홍문)이 있고, 화홍문 동쪽 고지에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이 있다.

 

 

□  남수문(南水門)


남수문은 수원천이 화홍문에서 남쪽으로 흘러 내려와 성곽과 다시 만나는 지점에 만든 수문이다.
수원천 하류 수량 증가에 대비하여 9개의 홍예 수문으로 되어 있으며,

수문 위에는 성 밖 적들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포사가 세워져 있어 비상시에는 군사들이 대기하거나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남수문 복원을 위해 지난 2004년 남수문터에 대한 발굴조사에 나섰고, 2012년 6월 복원을 완료하였다.

                                                                                                                (출처_수원 관광)

 

수원화성을 준공 후 300년도 훨씬 지나 이 남수문을 복원할 때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를 참고했다.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그림과 치수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복원했겠다.

조선시대의 기록문화는 너무 정밀해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팔달문은 이곳의 중심이긴 하나 교통신호등이 없다.

팔달문 남쪽은 원형의 성곽으로 둘러싸 자연스럽게 회전교차로를 만들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차가 없는 틈을 타 잠시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 팔달문(八達門)


팔달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남쪽 문으로 남쪽에서 수원으로 진입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정조대왕과 당대 국왕들이 현륭원을 가기 위해 이곳을 통과했다고 한다.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15일에 완공하였다.
팔달문은 모든 곳으로 통한다는 '사통팔달'에서 비롯한 이름이며 

축성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었다.

                                                                                                    (출처_수원 관광)

팔달문은 화성을 지을 당시에 이곳이 교통의 중심이란 걸 이름으로 알 수 있다.

지금도 팔달문 상하좌우로 크고 작은 도로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밖으로 통하는 남쪽 성문에서 찍은 팔달문

 

□ 서암문(西暗門)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문이다.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설치되어 있다.
서암문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기 전에는 암문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감춰져 있다.
1796년(정조 20) 6월 18일 완공되었다.

                                                                                  (출처_수원 관광)

 

북한산성이나 여타 산성의 평면인 데 비해 이곳 암문은 직각으로 꺾어 공격과 수비가 용이하다.

 

□ 서장대(西將臺)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華城將臺)’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이다.
1794년(정조 18) 8월 11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29일 완성되었다.  

                                                                                                     (출처_수원 관광)

 

 

 

정조가 화성장대에서 군사 훈련을 지켜본 후 감회를 읊은 시

 

정조는 1795년 수원행차 넷째 날인 윤 2월 12일에 서장대에 올라 장용영 외영

(정조의 친위 군사조직 중 화성을 지키는 부대) 군사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튿날 새벽까지 실시된 군사훈련을 참관한 후 군사들을 칭찬하고 견고하게 쌓은

화성 성곽에 대해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날의 훈련을 기념하고자 친히 시를 짓고, 이 시를 현판에 새겨 서장대에 걸도록 했다.

본래 서장대 2층에 게시되었으나 복제본은 1층에 두었다.

원본 현판은 국립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華城將臺 親閱城操 有詩題于 楣上 (화성장대 친열성조 유시제우 미상)
화성장대에서 친히 성 안에서 하는 군사훈련을 점검하고 시를 지어 문 위에 걸다
拱護斯爲重 經營不費勞 (공호사위중 경영불비노)

현륭원을 호위하는 일 중하지만, 세금과 노역을 쓰지 않았네
城從平地迥 臺倚遠天高 (성종평지형 대의원천고)

성은 평지를 따라 둘러있고, 먼 하늘에 기댄 장대는 높다랐구나
萬垛䂓模壯 三軍意氣豪 (만타규모장 삼군의기호)

수많은 성가퀴는 구조는 굳건하고, 삼군의 의기가 호쾌하네
大風歌一奏 紅日在鱗袍 (대풍가일주 홍린재린포)

대풍가 한 곡조를 연주하니, 붉은 햇살이 비늘 갑옷을 비추는구나

                                                                                                (안내문)

 

□ 서노대(西弩臺)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시설이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가 두 곳이 있다.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여 사방을 볼 수 있으며 정팔각형 평면이며 기와 벽돌로 쌓았다.

                                                                                                         (출처_수원 관광)

 

화성장대에 올라왔을 때 벌써 10:20이다.

11:00부터 화성행궁에서 수원시립 공연단이 진행하는 무예 24기 시범공연을 보기 위해 내려간다.

점심때가 안 됐으나 배가 출출하므로 빵집에서 빵과 음료수를 먹고 공연을 가운데서 볼 수 있는 장소에 앉는다.

 

 

 

 

무예 24기는 정조대왕이 박제가, 이덕무, 백동수 등에게 편찬을 지시한 무예 훈련 교범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실린 무예를 선보이는 공연이다.

 

이 책에는 그동안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서 사용하였던 병기를 망라하여 소개하고

당시 새롭세 개발한 병기를 보충하였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나라 무예를 집대성한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

병기는 모두 24기(技)를 소개하였는데 칼, 창, 활 등 전통적 병기를 비롯하여 새로 도입된 왜검,

표창, 곤봉 등을 세밀한 도면을 덧붙여 설명해 놓았다.

특히 맨주먹으로 벌이는 무예인 권법과 말을 다루는 기예인 마상재를 상세히 다루었다.

이 책은 전투 기술을 중심으로 실전 훈련을 위한 교육용으로 편찬되었다.

                                                                              (출처_이이화의 한극사 이야기 중 일부)

 

 

공연이 끝난 후 화성행궁을 잠시 둘러본다.

화성행궁과 무예 24기 시범공연은 별도로 포스팅할 예정이다.

화성행궁과 무예 24기가 궁금하면...

 

수원 화성행궁 탐방과 무예24기 공연 관람

2022.6.2 (목) 10:45~11:55, 70분 탐방 (무예 24기 공연 포함) 차량 앞 유리가 살짝 금이 가 수원으로 복원하러 왔으나 너무 경미해 고칠 수 없다고 한다. 귀가하느니 수원 광교산 등산하기는 힘들고 귀찮

blog.daum.net

 

 

 

화성행궁의 무예 24시 시범공연은 화~금 11:00에 한 차례

토~일 11:00, 14:00 두 차례 실시한다.

뿐만 아니라 장용위 수위 의식은 4월~6월, 9월~10월의 일요일 14:00에 거행된다.

 

 

 

 

무예 24시 시범공연과 관람한 후 화성행궁을 둘러보고 난 뒤 다시 화성장대로 올라가 나머지 구간을 탐방한다.

 

다시 보는 화성장대

 

화성장대 마당에서 보는 화서문 일대 

 

 

□ 서북각루(西北角樓)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이다.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 지휘소 역할도 하였다.
서북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하나로 숙지산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서 

화서문 일대의 군사를 지휘하기 위해 만들었다.

                                                                                             (출처_수원 관광)

 

 

 

 

□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능한 시설로 수원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1796년(정조 20) 3월 10일 완공된 서북공심돈은 3층 건물로 아래쪽 부분의 치성(雉城)은 석재로, 

위쪽 부분의 벽체는 전돌로 쌓았다.
내부는 전투에 편리한 구조를 갖추었으며 계단을 통해 오르내렸다.
1797년(정조 21) 1월 화성을 방문한 정조는 서북공심돈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며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출처_수원 관광)

 

□ 화서문(華西門)


화서문은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이다.
1795년(정조 19) 7월 21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6년(정조 20) 1월 8일 마쳤다.
화성 서쪽의 남양만과 서해안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 역할을 하였다.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었다.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였던 채제공(蔡濟恭)이 썼으며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성문 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출처_수원 화성)

 

 

성곽에서 보는 서북공심돈

 

 

 

화서문

 

 

□ 장안문(長安門)


장안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북쪽 문으로 수원화성의 정문이다.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5일 마쳤다.
장안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의미한다.
장안문은 우진각 지붕(지붕면이 사방으로 경사지게 되어있는 형태)으로 규모가 웅장하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달 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출처_수원 관광)

 

수원시의 ‘장안(長安)’이라는 구 이름은 화성 4대문의 하나인 북쪽 대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장안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주(周) 나라 이래로 진(秦)·전한(前漢)·수(隋)·당(唐) 등의 수도 이름이었다. 

즉, 중국의 오랜 역사에서 국가의 안녕을 상징하는 문자로 쓰여 왔다. 

따라서 정조가 화성 북쪽 문의 이름을 ‘장안문(長安門)’이라 정한 것은 태평성대를 구가한 

한(漢)·당(唐)의 서울이었던 장안의 영화를 화성에서 재현하려 한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출처_수원특례시 장안구청)

 

 

□  북수문(北水門) - 화홍문


화성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수원천 위에는 북수문과 남수문 두 개의 수문이 있습니다.
북수문은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5년(정조 19) 1월 13일에 완성되었습니다.
별칭은 화홍문으로 화(華) 자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虹) 자는 무지개를 뜻합니다.
장쾌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출처_수원 관광)

이 화홍문은 수원천 위를 지나가는 북수문이다.

수원천에서 물 위에 어떻게 세웠는지 다시 보자.

 

화홍문

 

수문 안쪽은 이렇게 무지개 모양으로 만들었다.

성 바깥쪽으로 문을 달았던 흔적인 돌쩌귀인 지도리 흔적이 남아있다.

 

화홍문은 개방하여 쉼터로 잘 활용된다.

 

□ 용연(龍淵)

 

용연은 화성의 북쪽 성밖에 있는 연못이다.

금강산 구룡연을 비롯해서 전국의 이름난 명소에 용연이란 명칭이 두루 쓰였고 갖가지 전설이 있다.

화성의 용연은 용머리처럼 생긴 용두 바위에서 유래했다.

용두 바위 위에 있는 방화수류정은 '용두각'이라고도 부른다.

「화성성역의궤」에는 용연이 반달처럼 생겼고, 용두 바위는 물고기를 잡는 조대로 쓸만하다고 기록되었다.

요연의 물이 넘치면 서쪽의 출수구를 통해 수원천으로 흘러 나간다.

출수구에는 용이 되기 전 단계의 짐승인 이무기 상을 새겼는데 원형이 잘 남아 있다.

용천에 비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인 '용지대월'은 화성에서 보아야 할 아름다운 경치로 꼽힌다.  (안내문)

 

 

 

 

방화수류정에서 보는 용연

 

 

 

 

□ 동북각루(東北角樓)


방화수류정은 1794년(정조 18) 10월 19일 완공되었다.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 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_수원 관광)

 

방화수류정은 수원화성에서 제일 경치가 좋은 곳에 위치했을 뿐 아니라 건물도 보기 좋다.

수원화성을 방문한다면 방화수류정은 반드시 들려야 할 명소이다.

 

 

 

□ 북암문(北暗門)


북암문은 동북각루의 동쪽 40보 되는 벽돌로 쌓은 성 사이에 있다.
안과 밖의 홍예 역시 벽돌로 쌓았다.
안쪽은 너비가 4척 6촌 높이가 6척 5촌이고, 바깥쪽은 너비가 4척 높이가 6척이다.
문위에는 둥근 여장을 설치했는데 제도는 동암문과 같다.
홍예 사이에는 돌계단을 설치하여 들어가는 곳은 높고 나오는 곳은 낮게 만들었는데, 지세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출처_수원 관광)

 

동북포루로 이동하며 보는 방화수류정 

 

성벽이 길게 늘어진 게 중국의 만리장성을 보는 느낌이다.

 

□ 동암문(東暗門)


동암문은 동장대 서쪽 166보 되는 곳에 있다.
동쪽에 자리 잡고 북쪽을 향하여 있으며 벽돌로 안과 밖의 홍예를 만들어 말 한필이 지나갈 수 있다.
안쪽 너비는 7척 높이는 8척이고 바깥은 너비가 6척, 높이가 7척 5촌이다.

문 위는 벽돌을 깔았고 누는 세우지 않았다.
다만 오성지와 한 개의 큰 둥근 여장을 설치하였는데 마치 나무로 만든 전붕(戰棚)의 제도와 같다.

                                                                                                          (출처_수원 관광)

 

안내문에 문 위는 벽돌을 깔고 누는 세우지 않았다고 했는데, 당연하다.

누각을 세웠다면 이름은 동암문이 아니라 동문루로 바뀌었을 것이다.

 

동암문을 나와 성벽 밖으로 걸어 동북공심돈과 동북노대 사이로 난 차도를 통해

다시 수원화성으로 들러갈 생각이다.

 

수원화성은 성 안으로 탐방해도 좋고, 성밖길로 탐방해도 좋다.

성 밖에서 걸으며 보는 느낌은 또 다르다.

 

밖에서 보는 동북공심돈

 

 

□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동북공심돈은 노대의 서쪽 60보쯤 되는 거리에 있다.
성탁(城托)의 위 성가퀴 안에, 요동(遼東)에 있는 계평돈(平墩)을 본떠서, 

벽돌로 쌓아서 둥그렇게 돈(墩)을 만들었는데, 겹으로 둘렀다.
높이 17척 5촌, 바깥 원 둘레 122 척, 벽돌로 된 부분의 두께 4척, 안쪽 원 둘레 71척, 

내원과 외원 사이에 가운데 4척 5촌의 공간을 비워두고, 2 층 덮개판으로 둘렀다.

아래 층 높이 7척 3촌, 가운데 층 높이 6척 5촌인데, 모두 군사들의 몸을 숨길 수 있게 하였다.

                                                                                                         (출처_수원 관광)

 

동암문을 통해 성 밖으로 나가 성벽길을 돌고 다시 성 안으로 들어왔다.

육중한 동북공심돈은 잠겨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연무대로 쓰이는 동장대로 내려간다.

 

□ 동장대(東將臺) - 연무대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머물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동장대는 1795년(정조 19) 7월 15일 공사를 시작하여 8월 25일 완공되었다.
무예를 수련하는 공간이었기에 연무대(鍊武臺)라고 하였다.
이곳의 지형은 높지 않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등성이가 솟아 있어서

화성의 동쪽에서 성 안을 살펴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출처_수원 관광)

 

동장대는 사실 연무대 편액이 걸려 있다.

연무대 앞으로 군사들의 훈련 장소로 쓰기에 적합한 너른 마당이 위아래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쪽에선 무예 24기 등의 무술을 연마할 수 있고 밖엔 공심돈 방향으로 화살을 쏘는 장소도 있다.

 

 

연무대를 끝으로 창용문을 나서며 수원화성 탐방을 끝낸다.

 

 

차 유리 복원을 하러 왔다가 유리는 못 고치고 수원화성을 탐방했으니 나름대로 소득은 있는 셈이다.

직장에 다닐 때 수원에 교육원이 있어 수원화성은 그동안 두세 번 다녀간 곳이다.

은퇴하고 나니 시간이 여유로워 무예 24기 시범공연까지 본다고 다섯 시간 30분을 넘게 보냈다.

무예 24기 시범 공연은 다음 포스팅으로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