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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마을에서 보니 그림같은 옥산성

by 즐풍 2021. 6. 26.

2021_71

 

 

2021.6.19. () 오전에 탐방

 

 

죽림해수욕장을 나오며 바라보이는 앞산의 그림같은 바위와 정자가 궁금해 찾는다.

마침 반곡서원에 주차 공간이 있어 주차한김에 반곡서원을 탐방하고 올라왔다.

멀리서   개인이, 또는 지자체에서 경치 좋은 곳에 세운 정자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막상 올라오니 옥산성이란 안내문이 있다.

 

옥산성이 위치한 곳은 네이버지도나 카카오맵에 동산(141.7m)으로 표기되어 있다.

동산은 계룡산자락의  구간으로 바닷가 마을을  조망할  있는 도드라진 곳이다.

곳곳에 바위가 많아 유사시 은폐 엄폐가 쉬운 곳이라 전략적 요충지로 가치가 높다.

이런 지리적 이점으로 산성을 만들었겠단 조상의 지혜가 돋보인다.

 

 

□ 옥산성

 

옥산성은 거제 계룡산 자락의 수정봉(해발 143m) 정상 부분을 타원형으로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동쪽은 폭이 넓고 서쪽은 폭이 좁은 표주박 형태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수정산성이라 했는데 지금은 서쪽 정문 입구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옥산금성이라는 

문구를 따라 옥산성이라 부른다.

옥산성이 자리한 거제면 일대는 현종 5(1664) 거제의 *읍치를 고현 지역에서 이곳 거제면으로 옮겨 

조선시대 말기까지 거제현 관아가 위치한 곳이었다.

옥산성이 만들어진 시기는  안에 설치되어 있는 축성비의 내용에 따라 고종 10(1873) 

거제 백성들이 힘을 모아 축조한 것으로 되어 있어, 

우리나라 산성  가장 마지막 단계에 축조된 신성으로 알려져  왔으나 2017 성내 집수지  2020 건물지 발굴당시 

7세기에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옥산성의 최초 축조시기는 7세기(통일신라시대) 이전임이 확인 되었다.

성을 쌓는데  돌은 가까운 계룡산 자락과 인근 야산에서 구해온 것으로 크지 않은 막돌을 사용하였고, 

현재 성곽은 원상태로  남아있다.

문지는 서문지와 동문지  개가 있는데 원형이  보전되어 있으며, 

성문 입구를 사각형 *내옹성으로 만들어 성문을 보호하고 돌계단을 두어 성안으로 출입하게 하였다. 

또한 안에는 다수의 건물지와 집수지, 투석용 몽돌 저장시설 등이 남아있다. 

 

테뫼식 산성:  꼭대기를 중심으로 하여 산의 7~8 능선을 따라 거의 수평이 되게 성곽을  바퀴 둘러쌓은 산성

읍치: 지방 주인들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내옹성: 성곽에  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안쪽에 설치한 이중 성곽. (안내문)

 

 

옥산성 배치도

이 도면에서 남아 있는 건물은 4번 누각인 금성대뿐이다. 

 

성벽

 

 

 

송희성(宋熙昇,1827년~ ?) 자는 경호(敬鎬), 본관은 은진(恩津), 부(父)는 송관화(宋觀和)이다.

거제부사로써 1872년 고종 9년 6월 26일 임명장을 받고,

1872년 7월 26일 부임하여 1874년 7월까지 거제부사직을 수행하다가 강원도 삼척영장(三陟營將)으로 전보된다.

1875년 3월 달에는 거제부사 시절, 옥산금성 축성을 위해, 군민을 강제로 부역케 하고 거금을 갹출시켜

군민들에게 큰 부담을 주었고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하여 송희성은 파직되었다.

그 해 5월 달에 장 1백대를 맞고 경상도 풍기군으로 정배(定配), 1876년 2월에는 벼슬자리에서 내치고 제 고향으로 내쫓던 형벌,

즉 방축향리(放逐鄕里)되었다. 

고종 16년 1879년 6월 25일 순천영장(順天營將)으로 등용되었으나 7월 16일 곧 하직한다.

고종 17년 1880년 12월 29일 오위장(五衛將, 정3품)으로, 뒤이어 대구영장(大邱營將),

1882년 9월 14일 혜산첨사(惠山僉使 정3품)로 재임하다가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그는 조선 말기 무관으로써 해안방위의 절대적 필요성을 강조하고 실천했으나

세계 열강의 무기체계와 발전된 시대 상황을 몰랐던 전형적인 조선시대 舊무인이었다. 

                                                                                                                      [출처_뉴스앤거제 연재 "고영화의 거제산책"에서]

 

동문지를 통해 옥산성으로 오른다.

 

 

 

 

옥산금성축성비

 

□ 1 건물지

 

2019 도지정문화재 보수사업의 일환으로 발굴조사를 실시  결과 

돌로 쌓은 기단과 계단을 갖춘 *초석에 있는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높이가  1m 정도인 기단은 처음 축조된 기단석에 덧붙여 한 차례 증축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계단은 기단부 앞쪽에  개가 설치 되었다.

확인된 초석으로 보아 정면 여것 ,  측면  *칸의 건물지로 규모는 길이 17.5m, 너비너비 5.6m,면적 98 m2이다

건물지의 벽은 흙과 돌을 석어 축조하였고, 벽의 기초부에  회백색의 점토를 발라서 미장하였으며,

바닥에는 *박석을 깔았다. 

출토된 기와로 보아 건물지의 축조시기는 조선시대 후기로 판단되며, 

 건물지 왼쪽에 세워져 있는 ‘옥산금성축성비 기록과도 일치한다.

 건물은 벽에 화를 발라 미장한 , 바닥에 박석을  , 

난방 시설인 온돌 시설이 없는 점으로 보아 주거시설이라기 보다는 행정 또는 사무 등의 용도로 사용  것으로추정된다.

 

기단: 건축물의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층 높게 쌓은 

초석: 주춧돌 기둥 밑에 기초로 받쳐 놓은  

:  전통가옥에서 기둥과 기둥 사이를 일컫는 

박석: 얇고 넓적한                    (안내문)

 

 

금성대

 

 

발굴조사 중인 옥산산성의 이 자리는 우물처럼 보이는데, 아래쪽에 우물이 있으니 우물이 아닌 다른 용도일 것이다.

 

우물이 있고...

 

금성대

 

 

□ 옥산금성

 

거제도에서 마지막 쌓은 성(城)이 옥산금성이다.

계룡산 줄기가 남으로 뻗다가 작은 서편 산줄기를 하나 남기었는데 그 끝에서 아름답게 솟아났다고 옥산(玉山)이라 했다.

또한 거제면 동쪽 계룡산 밑 정상에 위치한 이 산성은, 수정같이 솟아 있다 하여 수정봉성(水晶峰城)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산성 서쪽 성문 아래 바윗돌에 '옥산금성(玉山金城)'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어 정식 명칭은 ‘옥산금성‘이다.

지금은 성터만 남아 있어 옥산성터(玉山城址)라고 부른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0호(1974.02.06)로 지정되어 있고 성의 둘레는 778.5m, 높이 4.7m, 폭 3m로,

조선조 말 고종 10년(1873년)에 거제부사 송희성이 거제 부민을 동원하여 쌓았던 것으로

성의 직경은 40~80cm의 장방형 자연석을 끝을 가지런히 하여 산 능선의 굴곡에 맞추어 타원형으로 쌓아 올린 테뫼성으로

성내의 요소마다 누각(樓), 무기고, 호(壕), 연못(池) 등의 방어진으로 구축하였으며

남쪽과 서쪽 성문은 'ㄱ'자형으로 만들고 돌층계를 마련하여 성안으로 출입하게 하였다.

 

옥산금성축성기(玉山金城築城記)에 따르면, 1873년 3월 6일 처음 축성을 결정했으며,

3월 15일 준비를 시작하여, 5월 달에 공사를 시작해 1873년 10월 15일에 성(城)이 완성되었다.

짧은 두서너 달 만에 거제도 전 지역에서 축성 비용을 마련하였고 실제 공사는 5달 보름 정도 걸렸으며,

총비용이 2만 냥 정도 되었으니 거제부 관 군민의 고통을 짐작케 한다.

경상도여지집성(慶尙道輿地集成) 거제군읍지성지조(巨濟郡邑志城池條) 水晶山城[주:在郡東北五里癸酉新築]

수정산성은 재군 동북 5리 1873년 축성. 부사 송희성 1873년 신축, 우물 1개 있다.

                                                                                                                            [출처_뉴스앤거제 "고영화의 거제산책" 중에서]

 

옥산성은 계룡산 자락에 도드라지게 전망이 좋은 곳이다.

이곳은 바닷가로 조망이 좋아 조그만 기척이 있어도 감시가 좋은 곳이라 산성이 들어설 명당인 셈이다. 

 

옥산성 탐방을 끝내고 저 계룡산을 다녀올 생각이다.

 

 

 

 

약산성 주변엔 이렇게 크고 작은 바위가 많아 은폐물로 삼으며 적을 응징하기 좋다.

 

 

 

 

옥산성과 계룡산을 연계하여 산행하기엔 거리가 좀 멀다.

이렇게 멋진 곳을 많은 사람이 함께하기를 희망한다.

 

앞 마을

가까운 바다의 양식장

 

 

 

 

탐방을 끝내고 서문을 통해 내려오는 길목 바위에 "옥산금성"이라고 한자로 각자한 게 보인다.

이 글자로 인해 옥산성으로 부르며, 누각은 금성대라 한 것이다.

서문 출구

 

계룡산 거제숲 소리공원으로 가는 길

 

무엇인지 궁금했던 곳은 옥산산성이다.

바위에 새겨진 옥산금성을 편하게 약산성으로 부르며 이 성을 쌓기 위해 이 지역 주민을 동원해 강제노역을 시킨 

주역은 나중에 날아갔다.

고종 임금 때이니 외세가 몰려오던 시기인데, 구시대적 발상으로 마지막 산성을 쌓은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옥산성은 중요성이 부족한 건지 지도엔 동산으로 표시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