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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딸 사위와 함께한 청량산의 남한산성 탐방

by 즐풍 2020. 9. 22.

2020_61

 

 

2020.9.18. (금) 10:03~13:42(전체 거리 9km, 전체 시간 03:40, 휴식 21분, 평속 2.5km/h) 맑음

 

 

딸과 북한산 산행을 가기로 했는데, 하루 전 사위가 직장 팀장님들과 함산 하면 어떻겠냐고 한다.

남한산성 인근에 사는 팀장님 두 분과 남한산성을 가는 데 동행을 제의한 것이다.

몇 번 가 본 남한산성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산이라 딸도 동행하기로 한다.

깜박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방화대교를 건너 인천 국제공항도로를 타고 청라 톨게이트에서 유턴했다.

꼼짝없이 18km를 왕복해 36km 거리를 더했으나 출근시간이 지날 때라 겨우 10여 분을 지체했다.

 

위례 스타필드 시티에서 만나 학암로 길을 따라 올라간다.

권투를 한다는 팀장님이 리딩을 하는데, 권투는 스텝이 기본 기술이라 그런지 걸음이 무척이나 경쾌하고 빠르다.

즐풍도 산행에선 걸음이 빠르단 소리를 듣는데, 오늘은 헉헉거리며 따라가기 바쁘다.

재야에 숨은 고수가 많다더니 사위의 반장님도 탁구를 한 덕에 다리 힘이 좋아 두 분이 막상막하다.

이제 갓 산행에 입문한 딸은 당연히 뒤처지니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진다.

 

 

□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의 산성으로 기원은 통일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672)의 옛 터를 활용하여

조선 인조 4년(1626)에 대대적으로 구축하였다.
서울의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지형적으로 평균 고도 해발 480m 이상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방어력을 극대화한 곳이다.

둘레가 12km에 이르며 산 위에 도시가 있을 수 있을 만큼 넓은 분지이기 때문에 백성과 함께 왕조가 대피할 수 있는

조선 왕실의 보장처(保障處, 전쟁 시 임금과 조정이 대피하는 곳)였다.
남한산성은 성곽을 쌓는 축성술 면에서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계속된 전쟁을 통해 동아시아의 한국(조선),

일본(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중국(명나라, 청나라) 사이에 광범위한 상호 교류가 이루어진 결과이다.

이 기간 동안 유럽의 영향을 받은 화포의 도입이 이루어졌고,

이런 무기 체계의 발달은 남한산성의 성곽 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남한산성 도립공원 홈피)

 

 

남한산성 등산 코스

 

 

 

남한 약수천(南漢 葯水泉) 표기를 보고 약수는 藥水로 써야 왜 이렇게 썼을까 궁금했다.

사전엔 당연히 藥水로 되어 있으나 좀 더 알아본다.

한자사전엔 약(藥)이란 뜻도 있다고 하나 헷갈리지 않게 보편적으로 쓰는 한자를 쓰는 게 좋겠다.

 

위례신도시

 

 

 

산행을 안내한 팀장 님은 입구에서 바로 오르지 않고 좀 더 많이 걸을 생각에 빙 둘러 올랐다.

빠른 걸음을 따라잡으며 이렇게 성벽을 만나니 다 올라왔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반갑다.

 

제6암문으로 올라왔다.

북한산성의 암문은 두세 명이 마주 다닐 정도로 넓은 편이나 남한산성은 겨우 한 명이 어깨를 구부리고 드나들어야 한다.

암문 앞에서 크기를 가늠하기 좋게 찍었다.

 

딸과 사위도 함께

 

제6암문(서암문)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이다

일종의 비밀통로이므로 크기는 작고, 적에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이 암문은 성벽의 흐름 방향과 달리 입구가 북서쪽을 향하고 있어 외부에서 쉽게 관측되지 않도록 했다.

동북쪽의 성벽을 돌출하여 암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

원성에 설치된 12개 암문의 외측 개구부(開口部)는 대부분 홍예식이지만, 제2암문과 이 암문은 평거식이다.

인조 15년(1637년) 1월 23일, 한밤중에 습격해온 청병을 크게 물리친 곳이라 하여 이 암문 부근을 

'서암문 파적지'라 부른다. (안내문)

 

암문에 올라와 성벽 밖으로 보이는 잠실 방향이다.

롯데타워가 크기나 높이 모두가 돋보인다.

 

남한산성 내 소나무 숲은 수도권 최대의 소나무 군락으로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

보기 드문 이 아름다운 소나무 숲은 일제 강점기에 전쟁 물자로 확보하고 땔감으로 무분별한 벌목이 이루어져

산성리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금림조합을 결성하여 소나무 숲을 가꾸고 보전하였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주도하여 1999년부터 ‘산성리 마을 신문’을 발간하여 왔다.

이는 일제시대 금림조합의 결성으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소나무 숲을 가꾸고 보전하였듯이

주민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마을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홈피 안내문 일부)

 

 

 

성벽을 담쟁이 풀이 뒤덮고 있다.

흡사 전쟁을 치르러 온 적군이 사다리 놓고 한 명 두 명 오르다 전부 달라붙은 느낌이다.

가정집이나 일반 건물이라면 제법 운치 있겠단 생각도 성벽이라 달라 보인다.

 

영춘정은 봄을 맞이하는 정자(迎春亭)라는 뜻이니 봄에 더 운치가 있겠다.

 

이 소나무가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병자호란을 겪을 때 지켜본 역사적 소나무일까?

수령이 400살을 넘어야 가능한데, 잘 돼 봐야 200~300년 정도이니 근세를 지켜봤겠다.

 

딸과 사위가 공교롭게도 검은색 등산복을 입었다.

 

성벽을 따라가는 길에도 소나무가 제법 커 그늘이 많다.

지역주민들이 소나무를 지키기 위해 애쓴 결과라니 고마움을 느낀다.

 

하늘은 맑고 숲은 상쾌하다.

햇볕은 따사로우나 걸어도 땀이 흐르지 않을 정도의 날씨라 탐방하기도 좋다.

 

성 밖의 풍경을 조망하는 두 분 반장님

 

 

 

성벽을 탐방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그림자를 만들어 주는 소나무

 

 

 

 

 

 

 

 

 

역시 산은 오름이 힘들다.

성벽길은 산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만큼 쉬운 곳이나 걸음이 빠르다 보니 에구~ 힘들다.

 

 

 

이 거리에 단풍 들면 참 예쁘겠다.

남한산성의 단풍 절정기는 예년의 경우 10월 말 정도였으니 참고하시길...

 

2019.10.31 현재 남한산성 단풍과 환종주

2019.10.31. 목 06:52~13:34 (전체 시간 06:42, 전체 거리 17.km,평균 속도 2.6km/h) 어제 한낮에 청명한 날씨가 너무 좋아 오늘 일기예보를 검색하니 마찬가지로 청명하다. 지난주말 북한산 단풍이 절정이��

blog.daum.net

 

 

 

멀리 북한산 보현봉과 백운대 일원의 정상까지 한눈에 잡힌다.

시야가 맑으니 가을은 점점 다가온다.

 

서문

 

 

 

서문을 빠져나와 성벽 아랫길을 통해 하산한다.

 

잠실이 지척인 위례엔 아직도 건물이 올라갈 공터가 보인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여전히 집 없는 서민이 많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산할아버지가 구름모자 대신 일반 모자를 썼다.

 

산할아버지는 여기에 길과 다리 3개, 층계를 3개씩 손수 만드시고 수많은 벚꽃나무와 은행나무,

단풍나무를 비롯한 관상수를 심고 가꾸는데 정성을 다하셨다고 한다.

그분의 정성을 갸륵히 여겨 이렇게 동상을 만들어 뜻을 기린다.

 

딸과 사위, 그리고 사위의 직장 선배님과 함께한 남한산 탐방을 끝냈다.

산행을 위해 위례신도시를 처음 밟아보며 세상은 1~2년 안에서 천지개벽을 느낄 만큼 빠르게 변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함께하신 두 분 팀장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