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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봄날의 서산1경인 해미읍성

by 즐풍 2019. 6. 27.

 

 

 

 

 

 

2019.04.07. 일  오후에 잠깐  흐림

 

예산의 예당호 출렁다리를 보러 온김에 서산 마애삼존불과 개심사 벚꽃을 보고 마지막 일정으로 해미읍성에 도착했다.

해미읍성은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던 관광지이나 예당호 출렁다리를 보러 온 김에 그 숙원을 푼다.

궁금증을 해결을 위해 높은 담장 안으로 들어선다.

 

 

 

 

 

해미읍성(海美邑城)

 

소재지 : 서산시 해미면 동문1길 36-1
문의 : 041-660-2540(해미읍성관리사무소)
성곽 총길이 1800m, 높이 5m, 면적 19만4천, 사적 116호

 

 

 

 

돌담 안의 기억,
역사를 간직하는 곳..

옛이야기 : 또 다른 이름? 탱자성!
해미읍성의 또 다른 명칭 ‘탱자성’ 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적군의 접근을 어렵게 하기위해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성 주변에 둘러심었기 때문에  탱자성이라고 불리웠답니다.

무성한 초록잎과 가시, 주황빛의 열매, 무척 아름다웠을 것  같은데,

해미읍성엔 그 시절 복원된 탱자나무를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부실공사 방지법??
해미읍성은 우리나라에서 보존이 아주 잘 된 성곽 중 하나다.
해미읍성 성벽에는 청주, 공주 등 각각의 고을명이 새겨져있다.

이는 해미읍성 축성  당시, 각 고을별로 정해진 구간을 맡도록 함으로써

혹시 성벽이 무너질 경우, 그 구간의 고을이 책임을 지도록 했다.   (서산시청 안내문)

 

 

 

 

해미읍성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성벽
크고 작게 쌓인 돌들은 해미읍성이 지나 온 역사를 머금은 채 아무 말이 없다.
왜구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1417년(조선 태종 18년)부터 1491년(성종 22년)까지
축성된 해미읍성은 보존이 잘 된 우리나라 3대 읍성 중 하나이다.
조선초기, 충청병마절도사가 근무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으로 1579년에는
충무공 이순신이 병사 영의 군관으로 부임해 10개월간 근무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후기, 천주교인들을 처형했던 장소인 호야나무가 아직도 묵묵하게 서 있다."  (서산시청 안내문)

 


잠양루

느즈막한 오후에 도착하자 넓은 주차장에 차를 댈 곳이 없어 성곽을 돌아 마지막 도로변에 주차하고 이곳 잠양루로 성에 들어선다.

말로만 듣고 보던 해미읍성을 이렇게 만난다.

 

 

 

작은 동산

 

 

 

민속가옥 

 

 

 

해미읍성에 들어서니 어디선가 사물놀이의 흥겨운 공연 소리가 들린다.

말할 것도 없이 소리가 이끄는 대로 발길을 옮긴다.

 

 

 

이 분들은 주말마다 이곳에서 몇 시간씩 공연을 하는 모양이다.

얼굴은 오랜 시간 햇빛에 타 구릿빛인데, 이렇게 돗자리 하나 깔고 장시간 앉아 연주하기도 힘들겠다.

이 어린 아이는 사물놀이 공연에 푹 빠졌는지 미동도 없이 지켜보고 있다.

그 모습이 맘에 들었는지 세 분이 지켜보는 모습 또한 흥겹다.

나도 이들을 한참 동안 지켜보며 미소가 입에 걸린다.

어쩌면 이 흥겨운 가락이 아이에 귓전을 오랫동안 머물다 언젠가 사물놀이에 빠져 국악을 전공할지도 모르겠다.

 

 

 

이젠 사물놀이 리더까지 이 아이의 관심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방문하신 전국 최대 순교성지로 외신 등에서 정원의 꽃밭처럼 아름답다고 극찬한 곳이다.

해미읍성은 성곽둘레 1,800m, 높이 5m, 면적 20만㎡로 현존하는 가장 잘 보존된 평성이다.

조선 태종 18년부터 세종3년까지 3년간 걸쳐 쌓았고, 성종 22년(1491)에 완전한 규모를 갖추게 된다.

 

선조12년 이순신 장군이 군관으로 근무하기도 했으며, 내포지방의 천주교 박해 때 1,000여명의 신도를 이곳에서 처형하게 됐다.

그때 박해와 관련한 회화나무(호야나무), 자리갯돌, 여숫골 등이 순교성지로 해마다 많은 순례객이 찾아오고 있다.

읍성 성곽과 소나무 정원에서 자연을 벗삼아 걸을 수 있으며 주말 전통문화공연 등으로 문화예술을 함께 즐길 수 있다.

 

해미읍성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문으로 유명세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그러나 기존에도 해미읍성역사 체험축제에 매년 2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가고,

주말 전통 문화공연 등으로 연간100만여명의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는 곳이다.

 

잘가꾸어진 잔디를 마음껏 밟을수 있고 연날리기, 떡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점차 관광객이 늘고 있다.

또한 해미순교성지가 인근에 있어 많은 수의 천주교 순교성지 순례객들이 연계하여 방문하고 있다.

다양한 맛집이 있고 숙박이 가능한 펜션, 농촌관광지 등 주변 관광 인프라가 잘 형성 되어 있다. (출처: 관광공사)

 

 

 

 

 

 

 

 

사물놀이 공연소리가 담장을 넘어 이 동헌 안까지 흥겹게 들린다.

 

 

 

 

 

 

 

역시 사물놀이 공연은 사람을 끌어 모으는 매력이 있다.

마을 노인들에게 이런 공연은 흥겨운 일자리를 창출할 뿐 아니라 이곳 탐방객에겐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니 좋다.

추운 겨울엔 잠지 공연이 중단되겠지만, 여름에도 천막을 치고 냉방기를 돌리더라도 이런 공연이 이어지면 좋겠다.

 

 

 

 

 

 

 

동산 위에 있는 청허정

 

 

 

 

청허정(淸虛亭)

 

청허는 "잡된 생각이 없어 마음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청허정은 해미읍성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이곳에선 천수만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시회(詩會)를 하거나 시를 읊던 곳이다.

청허정은 성현(1439~1504)이 지은 청허정기(淸虛亭記)에 그 유래가 전해진다.

이 정자는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부임한 조숙기가 성종 22년(1491)에 세운 정자다.

당시 충청도병마절도사영(해미읍성)에 들렀다 간 문인들이 남긴 시들이 남아있다.

조위(1454~1503)가 충청도 병마절도사 이손(1439~1520)에게 올린 청허정이란 시가 있고,

절도사 수령이 복무를 마치고 함께 청허정에 모여 지은 청허정연회도, 이경전(1567~1644)이 지은 시가 전하고 있다.

현재 청허정은 과거 관련 기록을 근거로 2011년 개축하였다. (안내문)

 

 

 

 

청허정 주변은 낮은 야산으로 소나무 군락지다. 가지치기를 잘 해 위로 제법 잘 자랐다.

 

 

 

이 소나무는 줄기 중간부터 가지가 많이 갈라져 반송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 나무만 떨어져 있으면 제법 돋보이겠으나 여러 소나무와 섞여 있어도 제법 근사해 보인다.  

 

 

 

 

 

 

 

 

 

 

 

 

 

 

 

 

현재 서산 해미읍성에서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성곽과 진남문뿐인데,

성곽을 쌓을 때에는 여러 고을의 백성이 동원되었다.

조선 전기 축성법에 따르면,

성을 쌓은 지 5년 안에 무너질 경우 법에 따라 축성을 감독한 관리를 논죄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때문에 성벽의 중간 중간에는 축성 때마다 동원된 사람들의 출신지를 새겨 그 책임을 다하도록 하였다.

그중 남문 왼쪽 아래에는 “공주 백성이 쌓았다”는 글씨가 있고,

동문으로 가는 성벽 아래에는 “여기까지는 충주 백성이 쌓았고,

다음부터는 임천 백성이 쌓았다”고 새겨져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돌담을 쌓은 뒤 안쪽은 흙으로 메꿔 이동하기 쉽고 밖은 해자가 설치됐으나 물길은 없다.

높이가 5m 정도로 제법 높아 쉽게 오를 수 없다.

 

 

 

 

 

 

 

 

 

 

 

이곳은 일반인이 활 쏘는 장소

 

 

 

성 안쪽은 이렇게 너른 잔디밭이 있어 어린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부모가 많다.

아빠와 함께 공을 차거나 연 날리기를 하며 단란한 한때를 보낸다.

 

 

 

 

 

 

 

 

 

 

 

성안에 이렇게 반송같은 소나무가 눈에 띄는 포인트가 된다.

 

 

 

먹거리 장터인 초가집들

 

 

 

 

 

 

 

 

 

 

 

 

 

 

 

 

 

 

 

 

 

 

 

정문인 진남문

 

 

 

안쪽에서 본 진남문

 

 

 

성벽을 수놓은 깃발

 

 

 

흥선대원군 시절인 1866년 천주교 박해 때 1,000여 명의 천주교 신도들이 고문과 처형을 당했다.

이 회화나무는 그 당시 고문의 흔적으로 지금도 철사줄이 박혀있다고 한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으로 해미읍성은 현재 '천주교 성지'로 부각되었다.

천주교 박해 당시 수많은 천주교 신자를 투옥했던 옥사를 재현한 곳도 마련돼 있다.

 

오전엔 맑던 날씨가 오후엔 갑자기 흐려지더니 새벽녘 몽환처럼 느껴진다.

이런 미세먼지로 뿌연 날이 아닌 진록색 맑은 날이나 단풍 든 가을에 방문하면 이곳 정취를 맘껏 누리겠다. 

 

 

 

 

 

 

 

소나무 참 멋지다.

멋 없이 길게만 자라지 않고 적당히 눕고 퍼져 소나무의 자태가 훌륭하다.

이렇게 멋진 소나무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가까이 가보지 않아 느티나무인지 벚나무인지 알 수 없다.

벚나무라면 벚꽃이 근사하게 필 텐데...

 

 

 

 

 

 

 

엊그제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찾은 돼지고기 찌개가 맛있다는 "맛이나 식당"을 찾았다.

오후 3시라 점심 시간이 지나고 저녁 먹기는 너무 이른 시간인데도 길게 줄이 서있다.

전에 그렇게 알려지지 않은 집이라는데, TV 방영 결과로 문전성시다. 

기다리다 물어보니 돼지찌개는 재료가 떨어져 없다기에 준비해 온 음식으로 한끼 때우고 귀가한다.

이렇게 예당호 출렁다리로 시작해 해미읍성을 마지막으로 서산 관광을 마치고

정체된 도로를 따라 거북이 걸음으로 겨우 집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