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3. 토 11:50~16:14(전체 시간 04:24, 전체 거리 8.04km, 휴식 시간 36분, 평균 속도 2km/h) 흐린 후 잠시 비
산다는 게 뭔지 늘 한결같이 돌아가는 쳇바퀴 같은 삶이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해도 뭐랄 사람이 없으니 샐러리맨의 편한 푸념일지도 모르겠다.
음주 가무를 못 하는 데다 이렇다 할 잡기도 없으니 무미건조한 삶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한때 놓아버린 책도 시력이 안 좋으니 더 이상 책을 들 생각도 없고 눈 껌뻑이며 읽을 생각도 없다.
천성이 그러니 뭘 새롭게 배우거나 시작할 엄두도 안 난다.
타고 난 천성은 바꿀 수 없다니 여전히 남은 무채색 인생에 어떤 현란한 색깔도 얹을 수 없음을 안다.
그나마 건강을 핑계로 시작한 등산이 다소나마 인생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등산 역시 편하고 단조롭다면 내 인생과 다를 게 뭔가?
때로는 오르기 힘든 바위를 기어오르고 체력을 극한까지 몰고 가야 직성이 풀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렇게 누적된 피로가 노화를 촉진하겠지만, 굳이 마다하지 않는다.
아직 장년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는 기간을 10여 년 움켜쥐고 있으니 그런대로 견딜 만 한 기간이다.
그 기간 산행기라도 이렇게라도 끄적일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두륜산 등산코스
모처럼 일산에서 출발하는 산악회를 이용한다.
이 산악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업력이 좋은 곳으로 서울 지역은 사당에서 출발해 양재를 경유하고,
도봉산역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태릉역과 건대역을 거쳐 이동한다.
일산 지역은 대화에서 출발해 백석역, 인천 송내역을 거쳐 산행지로 가는 세 군데 출발지를 두고 있다.
평일 산행도 운영하여 맘만 먹으면 1년 내내 산행할 수 있는 유일한 산악회다.
오늘 두륜산만 해도 버스 두 대 만차로 가는 데 초장축 버스를 40인승으로 운영하다 보니 앞뒤 간격이 넓어 안락한 느낌이다.
다만, 좌석이 비좁긴 한데 통로 쪽 의자를 중앙 통로로 7cm 정도를 이동시킬 수 있으므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일산에서 송내역을 거쳐 가므로 일산과 부천 시민들이 반반 정도 이용하는 편이다.
해남은 남쪽 끝으로 알려진 만큼 거리가 워낙 멀다 보니 백석역에서 06:40에 탑승해 두륜산 들머리에 11:40에 도착했다.
꼬박 다섯 시간 걸려 도착해 네 시간 40분 산행 시간이 주어지고 올라올 땐 4시간 30여 분 걸렸다.
한눈에 딱 봐도 남근상이란 걸 알 수 있겠는데, 미륵바위란 거창한 이름이 붙었다.
"미륵바위 유래"란 안내문을 보면,
먼 옛날부터 아들을 얻지 못한 부인들이 이 바위에 소원을 빌어 영험을 보았다.
또한 칠석날 소망을 기원하는 토속적 신앙의 바위로 전해진다.
도로를 만들며 매몰되어 옮겨 놓았는데, 자연석을 채취하는 무뢰한들에 도난당하여 도로변에 버려진 것을 이곳에 다시 세운 것이다.
산이라지만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진달래가 절반 정도 피었다.
두륜산만 하더라도 바다와 가까워 해풍의 영향을 받는지 좀 늦은 편이다.
드디어 오심재에 도착했다.
왼쪽으로 오르면 저 노승봉으로 오를 수 있고, 오른쪽으로 오르면 고계봉으로 오르는 인데 막혀있다.
오심재는 해발 455m이니 703m인 가련봉까지 150여 m만 오르면 된다.
두륜산
두륜산(703m)은 중국 곤륜산맥의 줄기가 동쪽으로 흘러서 백두산을 이루고 그 줄기가 남으로 흐르다가
한반도 땅끝에서 홀연히 일어나 쌍봉으로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두륜산의 이름도 백두산의 도(頭)자와 곤륜산의 륜(崙)자를 따 두륜산이라 불린다.
두륜산은 계곡이 깊어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계곡 위에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구곡구교(九曲九橋)의
다리가 놓여 있다.
또한 가련봉, 두륜봉, 고계봉, 도솔봉, 혈망봉, 향로봉, 연화봉 등 여덟 봉우가 있어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두륜산과 한라산이 자생지로 알려진 왕벚나무를 비롯해 동백, 비자, 후박, 차나무 등 무려
천여 종의 나무가 자라고 있어 식물 분포상 중요한 가치를 지닌 산이다.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으로 만 년 동안 흐트러지지 않을 땅이라 여겨
자신의 의발을 모시도록 한 명당 터이다.
두륜산에 자리한 대흥사는 조선 후기 연담유일이나 초의의순 같은 저명한 스님 등
13대강사와 13종사를 배출한 사찰로도 유명하다.
대흥사는 백제 구이신왕 7년(426)에 신라의 정관존자가 만일암을 창건하고
그 후 백제 무령왕 8년(508)에 이름을 전하지 않은 선행비구가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안내문)
건너편 고계봉
노승봉은 암봉이라 저 바위 왼쪽으로 돌아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야 한다.
전엔 저 돌문 사이로 오르는 길도 있었으나 지금은 편하게 나무계단을 타고 오른다.
2012년 1월 28일이니 벌써 7년 전이라 까마득한 옛날에 달마산까지 가겠다고 오늘과 똑같은 코스로 올랐었다.
그때 새벽에 오르다 보니 첫 번째 찍은 사진이 이 돌문을 통과해 나오는 사진이었다.
그러고 보면 백두대간 뛰겠다고 첫새벽부터 산행하는 반 미친 짓은 절대 하고 싶지 않은데....
노승봉이다.
워낙 바람이 심하게 불어 사진을 찍기도 힘들 정도다.
이곳에 더 서 있지 못하고 자리를 옮겨 건너편 봉우리를 찍고 있는데, 혼자 온 20대 귀여운 아가씨가 사진 좀 찍어달라고 부른다.
끙~하고 되돌아 가 사진 찍어주고 나도 품앗이로 사진을 찍어달래 두세 장 찍는다.
건너편 가련봉이다.
가련봉은 외쪽으로 바로 오르지 못하고 아래쪽으로 우회한 다음 봉우리 사이로 오르게 된다.
이곳부터 오를 수 있게 나무계단을 설치해주면 더 좋겠는데....
두륜산의 실질적인 정상인 가련봉이다.
가야할 두륜봉 방향
지나온 가련봉
맨 왼쪽이 가장 먼저 올라왔던 노승봉이다.
방금 지나 온 가련봉
가련봉 방향
두륜산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두륜봉에 있는 구름다리다.
만일재까지 내려가 다시 두륜봉으로 올라야 한다.
2년 만에 다시 찾았는데,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만 해도 맑던 하늘이 점차 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오후 3시부터 한두 시간 비가 내린다더니 점점 먹구름이 진해지기 시작한다.
모처럼 다시 찾았는데, 날씨가 받쳐주지 않는다.
만일재로 내려가며 지나온 암봉을 다시 본다.
두륜산은 도립공원으로 정상에선 서해와 남해가 보이는 전망 좋은 산행지다.
날씨가 흐려 당장 가까운 곳도 담아내기 힘드니 바다 풍경은 언감생심이다.
두륜봉이 이렇게 족두리처럼 상단 암봉만 보이니 다소 생경한 모습이다.
두륜봉 오르며 높은데서 다시 보면 전체가 잘 보인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거대한 함선 같다.
노아의 방주랄까? 이렇게 큰 함선이라면 지구를 탈출하진 못해도 온 세상이 다 잠겨도 몇 년 운항 잘하겠다.
더 작게 만든 함선
그 함선 아래가 만일재다. 표고 550m이니 두륜산까지 숨 한 번 쉬면 오를 수 있는 높이다.
좀 전에 내려온 가련봉 다시 보기
구름다리(白雲臺)
두륜산의 명물인 구름다리는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돌다리다.
아름다운 구름다리는 두륜산 대흥사의 8경인 대흥팔경으로도 유명하다.
입구의 목제데크 계단을 올라가서 5분이면 두륜봉 정상에 오른다.
구름다리는 하얀 구름이 바위 틈사이로 넘나든다고 두륜산 대흥사의 옛 사지(寺誌) 대둔사지(1823)에는 백운대로 기록되어 있다.
구름다리 가운데의 커다란 구멍사이로 바라보면 바로 앞으로 투구봉이 보이고 그 너머로 다도해가 보인다.
사람들은 구름다리를 건너면서 아슬아슬한 기분을 느낀다. (안내문)
거대한 코끼리가 등산객의 안전한 산행을 돕기위해 건너편 바위로 코를 댄 모습처럼 보인다.
그냥 길 수 없어 구름다리 위로 한 번 왕복하며 지신밟기를 하고 다음 목적지인 두륜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구름다위 위쪽 바위
구름다리 위를 지나는 등산객
두륜산은 불교계에서 영산으로 친다.
산 이름에 ‘윤회’(輪廻)를 암시하는 ‘바퀴 륜’(輪) 자가 들어 있어 더욱더 그렇다.
두륜산의 두륜봉에 벌써 두 번이나 왔으니 언젠가 단풍이 멋질 때 해남에 들릴 일이 있다면 다시 들려야겠다.
뒤로 노승봉과 가련봉이 보인다.
두륜봉 뒤는 낭떠러지이므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고 다시 뒤돌아 구름다리 옆길로 빠져 대흥사로 하산한다.
그러니 두륜봉은 두륜산에서 오를 수 있는 마지막 정상인 셈이다.
두륜봉(頭輪峯)
두륜봉(630m)은 가련봉(703m)과 함께 두륜산의 대표적인 봉우리로 거대한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륜봉 정상에 오르면 두륜산의 최고봉인 가련봉과 노승봉(688m), 고계봉(638m), 향로봉(469m), 혈망봉(379m), 연화봉(613m),
도솔봉(671m), 투구봉(533m)이 우뚝 솟아 있다.
강진만, 완도, 진도 일대의 아름다운 다도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두륜산 정상 아래엔 천연 돌다리인 구름다리가 놓여 있어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으며, 정상에선 날씨가 좋으면 제주도 한라산이 보인다.
두륜봉, 가련봉, 노승봉을 대흥사 해탈문에서 바라보면 마치 부처님이 누워있는 와불의 형상이라고 한다. (안내문)
가련봉 일대
전에 왔을 때 저 능선을 따라 끝까지 내려갔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때만 해도 저곳으로 가는 등산객이 별로 없어 한겨울임에도 나뭇가지를 뚫으며 진행하기 어려웠다.
하산 후 버스로 달마산까지 이동해 달마산을 타려던 계획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바위가 두륜봉을 내려가며 보는 마지막 바위다.
왼쪽으로도 바위가 있으나 그놈을 잡기엔 너무 가까운 데다 평범하고 이 둘을 함께 잡기엔 거리가 너무 가깝다.
폰의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해 잡긴 했으나 옆으로 너무 퍼져 사실감이 왜곡돼 올릴 수 없었다.
이후 내려가는 길은 무척이나 바쁜 데 비마저 내릴 듯 더 어두워져 서둘러 하산했다.
중간에 진불암 입구의 산행 안내 지도를 보니 표충사는 있으나 최종 목적지인 대흥사는 보이지 않는다.
표충사를 더 지나 대흥사가 있겠거니 하고 무작정 걷다가 드디어 어느 큰 절에 도착했다.
표충사는 400~500m 앞두고 오락가락하던 빗방울이 사찰이 보이자 갑자기 우비를 꺼내 들게 만든다.
절로 들어가는 대문 아래 처마에서 우비를 꺼내 입고 절을 구경하며 제법 큰 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몇 장 사진을 찍고 아래쪽 대문을 나서려는데 두륜산 대흥사란 편액을 본다.
아니 이게 대흥사였어?!
그런데 왜 안내도에 더 유명한 대흥사 대신 표충사라고 했을까?
진불암에서 대흥사로 내려오다 만나는 첫 번째 건물이 표충사일 텐데
비가 오는 바람에 우비를 걸치던 곳인데 비를 맞으며 들어가기 싫어 건너뛴 곳이다.
표충사는 임진왜란때 승병을 중심으로 창의하여 왜적을 물리친 서산대사 휴정(休靜), 사명당 유정(惟政), 뇌묵당 처영(處英) 등 3대사(大師)의
충의를 추모하기 위하여 1789년(정조 13)에 제자들이 건립한 사당이다.
언젠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해남 강진 편을 읽으며 두륜산과 대흥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다시 발길을 옮겨 대흥사로 들어가 이것저것 살피며 찬찬히 사진에 담는다.
대흥사에서 우비를 꺼내 입을 때 카메라를 배낭에 넣었다.
이 사진 이후는 모두 아이폰으로 찍은 것으로 워낙 흐린 날씨라 카메라든 아이폰이든 화질 차이는 없어 보인다.
창덕궁 부용지처럼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의미의 천원지방의 형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만든 연못이다.
향나무가 층층이 하늘을 의미하듯 둥근 형태이고 연못은 어디로든 뚫고 나갈 기세로 자연스럽다.
좀 더 넓게 잡아본 모습
해탈문 밖에 설치된 두륜산 대흥사란 편액을 보고 다시 뒤돌아 대흥사로 들어간다.
대흥사 뒤로 두륜산이 포근히 감싸고 대흥사 옆구리를 통해 겨울 가뭄이 오래된 이 계절에도 물이 제법 흐른다.
작은 개울 건너 침계루
홍매화의 삶과 죽음이 작은 가지에도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대법당이 본체에 있지 않고 작은 개울 건너 침계루 안에 마련되었다니 다소 의외다.
전기를 이용한 촛불이 비를 맞으면 안 되기라도 하듯 비를 피할 수 있게 만든 도기 안에 설치됐다.
침계루 안쪽에서 본 건물
대웅보전 돌계단의 돌사자
돌계단 머릿돌에 이처럼 호신수를 새기는 것은 범어사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 돌사자는 아주 매섭게 생겼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인용)
대흥사 삼층석탑(보물 제32호)
이 탑은 통일신라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 자장율사께서 중국에서 가져온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이곳에 모셨다고 한다.
1967년 1월 탑을 해체하고 보수하는 과정에서 동으로 만든 12cm 높이의 여래좌상 1구가 발견되었다.
북미륵암 3층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석탑양식이 이 지역까지 전파된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안내문)
이 용샘물의 석물은 최근의 것이리라.
이 느티나무는 500년 된 보호수로 뿌리가 서로 연결된 연리근이다.
오래된 숙박업소인 유선관은 이제 여관 기능 보다 음식점의 역할이 더 커 보인다.
유선관의 음식솜씨를 엿볼 수 있는 장독대
모처럼 다시 찾은 두륜산은 날씨탓에 기대에 못 미쳤다.
두륜봉에서 대흥사로 하산하는 길은 가파른데다 비가 내릴 듯 흐려 걸음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대흥사에서 제법 시간을 보내고 어렵지 않은 산행을 끝내 다행이다.
첫 번째나 두 번째 모두 미진한 산행이라 언제간 다시 방문할 산행지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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