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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 탐방/북한산

북한산 14성문 종주기

by 즐풍 2019. 6. 12.

 

 

 

 

산행일자 2015.9.28.월(추석연휴) 07:00-18:07(11시간 7분, 이동거리: 17.12km)       날씨: 맑은 후 오후부터 흐림  



북한산성의 시발점은 맨 아래쪽에 있는 수구문으로 봐야 하겠지만 1925년 7월 홍수에 흔적도 없이 유실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자리에 수구정이란 음식점을 하던 상가만 덩그러니 남아 『북한산성 교육정보센터』로 이용하고 있다.

옛날에 우마차가다니는 길을 정문으로 친다면 대서문을 첫 관문으로 여길 사람이 더 많겠다.

등산할 때 큰길인 대서문으로 올라가자면 아스팔트 길을 걸어야 하는 데다 거리도 800여 m 정도 멀어 산성계곡길을 이용한다.   

수구문의 성벽 오른쪽으론 대서문과 연결돼 의상능선으로 올라가고 왼쪽은 원효봉 시구문과 북문으로 연결된다. 

어느 쪽이든 산성이 생기고 난 후 300년이 훌쩍 지나면서 수목이 자라고 인적이 끊겨 길이 차단되다 보니

성벽으로 연결된 길의 통행은 막혀있다. 
북한산성을 쌓았다는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로 백제 4대 개루왕 5년(132년)이라고 한다.

지금의 북한산성은 조선 숙종 37년(1711)에 불과 6개월이란 짧은 기간에 완공되었다.

 

이렇게 빨리 축성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직전에 서울 도성을 축성한 경험이 있고,

계획 수립에서 축성까지 치밀하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 군데서 동시에 산성을 쌓으면서 팀별로 경쟁도 하면서 서두른 결과다.    

산성을 짓고 난 후 대서문, 중성문, 대남문, 대서문, 대동문 등 문루와 행궁까지 짓는데 2년 반이 

더 걸렸다고 하니 

큰 역사가 이루어 진 것이다. 

이후 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훼손되고 무너진 곳을 고양시와 서울시가 각각 복원에 나선 결과, 

일부 구간은 원래의 형태와 다른 부분도 많다. 

1925년 대홍수 때 유실된 행궁이나 훈련도감유영지 등은 복원 계획이 잡혀있는지 모르겠다.

유지관리비만 들 테니 굳이 복원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중흥사는 일부 복원되었고 서암사나 부왕사도 복원될 예정이고 보면 폐사지가 된 사찰은 시주나

종단의 지원 등으로 점차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설악산이 서북능선과 공룡능선을 연결하는 중심선을 기준으로 내설악 외설악으로 구분하듯이 북한산도

북한산성을 기준으로 성안과 밖으로 구분된다.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나 주능선을 밟자면 14성문 중 어느 한 문이라도 통과해야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으니 한두 개 문을 통과하는 것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오늘은 산성에 발을 딛고 열네 개의 문을 통과하는 이른바 14성문 종주에 나선다.
중성문을 뺀 12성문 종주는 벌써 꽤 여러 번째다. 북한산 등산이 잦다보니 가끔은 이렇게 테마를 정해 

산행할 필요가 있다.
14성문 종주를 어느 쪽으로 돌까 고민 좀 하다 서암문(시구문)부터 돌기로 한다. 
 

14성문 종주도(트랭글 지도 다운)

 

 

산행은 효자마을 구판장에서 효자원을 통과하여 서암문으로 오른다. 계곡으로 올라가며 토속신앙과 관련된 그림을 본다.

 

 

효자동 구판장에서 서암문으로 올라갈 때, 계곡으로 올라가다 보면 왼쪽에 있는 큰 바위에 새겨진 그림이다.

토속신앙의 일종일 텐데, 누가 관리하는 지 몇 년 동안 그림은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

 

 

드디어 첫 번째 성문인 서암문이다.

서암문은 성내에서 생긴 시신을 이곳으로 내보낸다고 하여 시구문이란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원효암

 

 

원효봉 정상 못미친 곳의 전망바위

 


 

산행을 시작한 지 64분 만에 두 번째 관문인 북문에 도착했다. 원효봉에서 백운대를 가자면, 보통 우측 상운사계곡으로

내려가 백운봉암문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성벽 중심으로 14성문을 돌 예정이므로 염초봉능선으로 오를 생각이다.

 

 

드디어 염초봉 문턱에 올랐다. 보통 12성문 종주는 의상능선부터 오르지만, 이번엔 시계방향으로 염초봉부터 오르는

이유는 이 소나무를 햇빛을 받았을 때 사진에 담아보는 것이다. 대부분 오후에 이곳을 통과하면 역광이라 늘 아쉬웠는데,

오늘 제대로 잡아본다.

그래도 여전히 미진하다. 더군다나 누렇게 시들어가니 이 소나무의 수명도 멀지 않다는 걸 직감한다.  

 


 

 왼쪽은 좀 전에 지나온 원효봉으로 흰선은 성벽이다

 


 

염초봉으로 오르며 앞서 한 바위를 어렵게 통과했다. 오르며 자세히 보니 내려갈 때 잘 안 보이던 홀더를 잡고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바위는 그동안 여러 번 잘 다녔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홀더도 잘 안 보여 무진 고생을 하며 내려갔다.

높이는 약 4m 정도로 책을 펼쳐놓은 모양이라 책바위라 하는데, 홀더를 찾기 어려워 하마터면 추락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하지만 어깨를 왼쪽 바위에 기대며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꽤 많은 힘이 들어 잠시 맥이 풀리기도 했다.

 

 전에 다른 사람이 내려오는 사진이다. 오른쪽 홀더를 보지 못해 고생했다.

 

 

책바위를 통과했다고 끝난 건 아니다. 피아노바위까지 탈출하려면 경사진 암봉을 또 통과해야 한다.

다행히 소나무가 징검다리가 돼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지만, 역시 마지막 관문은 피아노바위다.

탄지신공의 기술로 탈출에 성공하면 염초봉에서 더 이상 어려운 구간은 없다.

염초봉은 소림사에서 어렵게 무술을 연마한 후 강호로 나가기에 앞서 여러 시험을 거치는 과정과 비슷하단

느낌을 받는다. 다섯 구간의 힘든 과정을 통과한 후 염초봉 정상에서 지나온 암봉구간을 다시 보며 잠시 회상에 잠긴다. 

 


 

염초봉은 천혜의 요새로 길목에 한 사람만 있어도 능히 지켜낼 수 있는 구간이다.

이 염초봉도 북한산성의 한 구간으로 성벽이 설치되어 있다.

 

 

염초봉에서 내려와 백운대 서벽밴드를 탄다. 이 분들은 효자리 구판장에서 잠깐 보았는데 여기서 다시 만난다.

 

 

 

서벽밴드를 지나며 보는 염초봉. 저 구간을 지날 땐 모르지만, 여기서 보니 아찔한 암봉이다.

 


 

이번 14성문 종주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진행할 예정이다. 서벽밴드를 지나며 단풍을 만난다.

이틀 전 설악산에서 본 단풍 이후 처음으로 북한산에서도 제대로 된 단풍을 만난다.

 


 

건너편 만경봉, 잠시 후 용암문으로 갈 때 저 암봉의 허릿길로 가게 된다  

 


 

백운동암문까지 왔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잠깐 더 시간을 내 백운대까지 올라야 직성이 풀린다.

백운대 가는 길의 늘 상습 정체구간에 새롭게 계단을 설치하고 있다.

서로 교행이 가능하니 어려웠던 길이 편해지고, 상습적인 정체구간도 풀리게 된다.

 

 

드디어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다. 백운대는 북한산국립공원의 정상이자 명승으로 지정된 문화재이기도 하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기 전 이곳에 올라 "흰 구름 가운데 있다"고 하여 백운대란 명칭이 붙었다.

조선의 수도를 이곳에 정할 때 무학대사가 이곳에 올라 지형을 보고 도읍을 정했다고 하여 "국망봉"이라고도 한다.

 


 

 백운대에서 바라보는 인수봉

공자의 "인자요산인자수(仁者樂山仁者壽)", 즉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는

뜻에서 어질 仁자와 목숨 壽자의 두 글자를 빼내 인수봉(仁壽峯)이라 하였다.

백운대와 인수봉, 만경봉의 세 봉우리가 뿔 같이 솟아있다고 하여 삼각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백운봉암문을 올라갈 땐 사람들이 많아 내려올 때 사진으로 대신한다.  

 


 

만경대로 넘어가며 보는 백운대 일원

 


 

만경대 허릿길엔 단풍이 맞아주는 데, 올 가을 너무 가물어 벌써 말라비틀어지는 게 아쉽다

 


 

노적봉

 

 

 

 

 

 

오늘은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용암봉과 노적봉을 올라가보기로 한다. 용암봉과 만경봉으로 연결된 능선에도 이렇게 성벽이

설치되어 있다. 염초봉능선과 파랑새능선까지 성벽이 설치되어 있고, 백운대에서 백운봉암문, 만경봉, 용암문까지도 높지

않지만 성벽이 있다. 용암문에서 문수봉까지는 제대로 된 성벽이고, 의상능선도 염초봉처럼 지형지물을 잘 이용한 성벽이다.

그러고 보면 북한산성은 천혜의 요새임이 틀림없는데, 임진왜란 이전에 설치됐다면 전란의 참화를 좀 더 막지 않았을까.

 


 

용암봉에서 본 노적봉

 


 

만경봉이다. 백운동암문에서 만경대 허릿길을 올 때 제법 길다고 생각했는데,

이곳 용암봉에서 봐도 만경봉이 제법 큰 걸 알 수 있다.

잠시 후 노적봉에서 보는 만경봉은 어떻게 다른지 다시 한 번 보자.

 


 

용암봉 입구, 올라가는 길은 조심조심

 


 

왼쪽 앞쪽은 신랑신부바위, 오른쪽은 하루재에서 올라오는 깔딱고개, 뒤쪽은 도봉산 주능선이다.

 


 

오늘의 단풍은 이곳 용암봉이 한계선으로 이후 드문드문 단풍으로 물들긴 하지만 아직 전체적으로 제 색깔이 안 나온다

 


 

이번엔 노적봉에 올라서서 만경봉을 본다. 좀 전 용암봉에서 보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백운대와 인수봉, 오전에 저 백운대의 허리에 있는 서벽밴드를 타고 지났다.

 


 

노적서봉의 마스코트인 나폴레옹 모자바위

 


 

카메라 화각이 작아 백운대와 만경봉을 한 화면에 담을 수 없는 아쉬움

 


 

북한산성 안내문  

 


 

용암봉 아래에 있어 용암봉암문으로도 불리는 용암문이다. 암문은 일반 성문과 달리 전쟁 때는 비밀통로로 이용된다.

 

 

노적봉, 만경봉, 인수봉을 뒤돌본다.

 

 

동장대

동장대는 1712년(숙종 38년)에 지어졌다. 장대는 장군의 지휘소로 북한산성엔 동장대 외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다.

현재 동장대만 남아 있으며, 1996년 복원한 것이다.

 


 

대동문

대동문은 1711년에 축성된 것으로 서울 동북쪽 수유동과 우이동을 연결하는 관문이다. 1993년에 복원되었다.

이곳은 광장이 넓어 점심 때는 식사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평소엔 휴식 장소가 되기도 한다.

 


 

보국문 넘어가지 전 아카데미하우스 쪽으로 너머가는 칼바위 능선이 보인다.

 


 

보국문

1993년 보국문 상부의 여장을 복원, 부분적 수리도 함께 하였다  

 

 

 

대성문

대성문도 소실된 것을 1992년 복원하였다. 세월이 흘러 담쟁이 풀이 뒤덮어 지금은 다소 고풍스런 느낌이 좋다.

 


 

북한선성과 암봉군락

 


 

 

 

 

뒤쪽이 보현봉 정상이다

 


 

이제 거의 대남문에 다다르고 있다. 내려가는 길에 보이는 왼쪽 연화봉과 오른쪽 문수봉의 조화가 멋지다.

아래쪽엔 문수사가 보이고, 나무숲 사이로 성벽이 올라가는 모습도 보인다.

 


 

대남문에서 보현봉 일원을 다시 본다

 


 

대남문

북한산성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에 세워졌으며 소남문으로도 불렸다. 소실된 걸 1991년에 복원하였다.

 


 

청수동암문

 


 

대남문부터 부왕동암문까지 북한성을 복원한다고 길을 이리저리 돌려놓아 왕래가 불편하다.

산성이야 당연히 고증을 거쳐 복원하겠지만, 전에 복원된 것처럼 쌩뚱맞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뭄이 계속되다 보니 길을 돌린게 숲속이라 지날 때마다 등산화를 타고 올라오는 흙먼지가 보통이 아니다.

비라도 제법 많이 내려야 가을 가뭄도 해소되고, 이런 흙길의 먼지도 당분간 없어질텐데...

 


 

왼쪽 715봉 보다 낮은 나한봉엔 웬일로 단풍이 제법 많아 보이는 특이한 현상을 보여준다. 참나무가 많은 모양이다.

 


 

어찌하다 보니 나월봉 암봉군락으로 오르게 되었다

 

 

산악회에서 40여명이 이 에스컬레이터바위를 지나기에 한참을 기다려 겨우 오를 수 있었다  

 

 

보자, 이제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 의상봉만 지나면 14성문도 얼추 끝나간다.

하지만 옛말에 "百里行者半九十"이란 말이 있다. ‘백 리를 가려는 사람은 구십 리를 가고 나서 이제 절반쯤 왔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거의 다 왔다고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축구에서도 마지막 5분을 지키지 못해 점수를 내 주는 경우가 있다.

긴장을 놓지말고 여전히 조심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 다른 옛말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이것은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의욕을 북돋워 주려는 말이다.

어찌 보면 위 두 말이 상반돼 보이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적절히 쓰면 다 좋은 말이다.

 

저 의상봉을 지나서도 대서문을 거쳐 중성문까지 올라갈 생각이니 중성문에 가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겠다.

 

 

 좀 전의 에스컬레이터 바위를 넘어서면 반대로 이렇게 불거진 긴 바위 아래로 조심스럽게 내려와야 한다.

 

 

부왕동암문

 

 

아래엔 부왕동암문이 있고, 그 위로 성벽길을 지나게 된다.

 


 

시루에 떡을 찌기 위해 불을 지피는 형상이란 뜻의 증취봉

 


 

용출봉 앞에 있는 용혈봉의 바위가 떨어질듯 위태로워 보이지만, 막상 가보면 웬만한 지진에도 끄떡도 없어 보인다.

 

 

강아지바위

 

 

용출봉, 다음 주말엔 좀 더 많은 단풍이 보일거고, 그 다음 주엔 북한산도 만산홍엽이겠다.

시간이 없어도 10월 둘째나 셋째 주에 북한산에 들린다면 붉은 단풍 비경에 빠질 수 있겠다.

 


 

 용출봉과 의상봉

 


 

봉우리로는 마지막인 의상봉이다. 의상봉에서 다 내려가지 않고 대서문으로 연결된 성벽길을 따라 하산할 생각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12성문 또는 14성문을 돌 때 성문 위주로 진행하지만, 오늘은 성벽을 중심으로 종주 하다 보니

염초봉과 용암문을 오르게 되었다. 염초봉은 릿지 기술이 있어야 오를 수 있는 코스고, 용암봉은 허락되지 않은 구간이다.

이에 더해 서벽밴드와 노적봉을 올랐으니 시간은 한량없이 지나갔다. 그래도 다닌 곳이 다 북한산 비경이라 힘든 줄도 모르겠다.

 


 

가사당암문

산 위에 있는 마지막 성문이다. 용출봉과 의상봉 사이에 있으며, 국녕사로 내려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가사당암문도 부왕사암문처럼 문 위로 산성길이 나 있어 산성길로만 간다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

 


 

의상봉은 제일 낮은데도 불구하고 한 켠엔 제법 단풍이 든 모습이다. 더 높은 문수봉 보다 이곳엔 단풍이 보인다.

 

 

의상봉에서 대서문으로 질러 내려가는 길은 예전엔 주요 코스였는지 와이어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대서문

일제 말기에 파손된 채 방치된 것을 1958년 최헌길 경기도지사가 복원하였다.

현존하는 북한선성 성문 중엔 가장 낮은 곳에 있다. 1712년 숙종이 북한산성에 행차했을 때, 이 성문을 통해 들어갔다. 

 

성벽을 따라 대서문에 막 도착하고 난 뒤, 어떤 여성분도 뒤따라 도착했다. 이 길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아

길은 끊긴듯 흔적만 있고 수풀이 길을 가로 막는데, 여성분이 혼자 위험한 길을 스스럼없이 다닌다는 게 보통이 아니다.

 


 

대서문에서 끝내고 하산하면 12성문 종주가 된다. 이미 12성문은 여러 차례 종주한 경험이 있어 이번엔 중성문과 수구문을

더 넣어 14성문을 종주하기로 한다. 한참을 올라가 북한산성박물관 옆에 설치된 자판기에서 음료수 한 캔을 사서 먹는다.

그제 설악산 갈 때 3리터의 물을 준비해 절반만 사용하여 무겁게 배낭을 짊어지고 다닌 고생이 생각나 오늘은 설악산보다

짧은 구간인 데다 어려운 코스가 아니라고 생각해 물을 줄이다 보니 가사당암문에서 다 마셔버렸다.

 

역사관 앞에서 쉴 때가 오후 5시, 점심 나절까지만 해도 청명하던 날씨가 오후를 지나며 점점 어두워진다. 음료를 마시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며 하산하는 사람들이 발길을 재촉한다. 옆에 앉은 사람은 비가 많이 올 날씨는 아니라며 태평스럽게 내려간다.

중성문까지 가자면 제법 걸어야 하니 고민 좀 해 보지만, 오늘이 아니면 다음에도 힘들겠다 싶어 중성문을 다녀와 14성문 종주를

끝내기로 한다. 어렵게 종주를 마친 후 버스를 타자 비가 조금씩 떨어진다. 산행 중 비를 안 맞았으니 다행이다.

 

이 길은 평소 잘 이용하지 않는 코스로 석물로 된 대장군, 여장군은 처음 본다. 1997년 어느 도의원이 세운 것이다.

 


 

드디어 오늘의 14성문종주 중에서 가장 힘들게 도착한 중성문이다. 사실 가사당 암문을 지나며 국녕사로 내려와 

법용사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이 중성문을 만날 수 있어 그리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초 계획은 성벽 중심으로 14성문을 돌기로 마음먹은 터에 조금 더 고생하더라도

대서문을 찍고 중성문으로 오르잔 생각에 고생을 사서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체력을 다 쓴 뒤라 가장 힘든 중성문이 되었다.

 


 

대서문에서 수구문과 연결되는 마지막 성벽이다. 전엔 이 아래에 수구문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대홍수로

유실되었다. 주변엔 여러 음식점이 있었지만 2006년 정비되며 모두 철거되고 수구문산장으로 쓰이던 식당 건물만 남아

지금은 "북한산성 교육정보센터"로 쓰이고 있다. 이로써 북한산성 14성문을 모두 종주하게 되었다.  

 

종주시간 11시간 7분, 꽤 오랜 시간 걸은 셈이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12성문종주까지 합쳐 제일 늦은 시간에 종주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부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성벽을 중심으로 계획하다보니 여기저기 드나든 시간이 많았다.

더는 이렇게 종주할 여력이 없다. 더군다나 그저께 설악산 오색에서 공룡능선을 13시간 동안 타고 난 뒤 겨우 하루 쉬고

14성문을 종주하였기에 피로가 더 가중된다. 

 

이래저래 이번 추석 연휴의 산행은 오래 기억에 남겠다.

 


 

 수구문이 없어졌으니 "북한산성 교육정보센터"로 대신하며, 대망의 북한산 14성문 종주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