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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정족산성으로 둘러싸인 전등사

by 즐풍 2015. 2. 22.

 

 

 

2015.2.18. 수요일 오후

 

 

□ 전등사

 

불교가 전래된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이다.

전등(傳燈)이란 불법의 등불을 전한다는 의미란 뜻이다.

강화도가 고려시대 대몽항쟁의 본거지이고, 개항에 즈음한 외세침략의 주요 관문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사찰은 관헌과 승려가 함께 외세에 대항하는 전초기지였다.

단군왕검의 세 왕자가 쌓았다는 삼랑성은 지금은 정족산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둘레 약 2km에 달하는 정족산성 가운데 자리 잡은 전등사는 외세가 침입할 때에는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로 바뀌어 동문을 들어서면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를 볼 수있다.

전등사 안에 있는 정족사고가 지켜낸 조선왕조실록은 지금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으니 

역사적 책무도 다한 유서깊은 사찰이다.

 

1,600년 고찰에 들어서려면 정족산성의 동문을 지나야 한다.

단군의 세 아들 부여, 부우, 부소가 쌓아 삼랑성은 산의 지형을 이용해 능선을 따라 축조한 성으로

둘레가 2,300m 정도이다. 삼랑성은 지금은 정족산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양헌수 승전비: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물리친 양헌수 장군의 공적비

 

윤장대: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윤장대를 한 번 돌리면 책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한다.

 

 

 

장 맛이 좋아야 음식맛도 좋은데 고추장, 간장, 된장 그득 담겼을까?

 

관해암

 

 

 

 

 

새해 소원성취등

 

강설당

 

향로전

 

종각에 있는 범종: 중국 송나라 때(1097년) 회주 송명사에서 무쇠로 만든 만든 중국 종이다.
2차대전 당시 일본이 총기로 만들려고 인천 부평 병기창에 갖다 놓은 걸 광복 후 이곳으로 옮겼다.   

 

대웅보전

보물 제178호로 지정되었으며 광해군 13년(1621년)에 지어진 조선 후기 건축물로 으뜸간다

 

대웅보전 추녀 밑에 나신상 네 개가 추녀를 떠받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대웅보전 건립에 참여한 도편수가 불사를 하던 중 마을의 주모와 깊은 사랑에 빠지면서

혼인할 생각으로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맡겼다. 

공사 막바기에 이른 어느날 순정을 배반하고 돈을 싸들고 도망가자

평생 저주나 받으라며 나신을 조각해 벌 받는 형상이라고 한다.                         

 

 

 

 

 

삼성각

 

정족사고: 아래 안내문 참조

 

 

 

 

 

약사전

 

경내엔 아름드리 느티나무나 고목이 많아 유서 깊은 사찰임을 알 수 있다

 

명부전

 

극락암

 

대웅보전 주변 풍경

 

템플스테이 장소

 

 

 

 

 

전등사 대웅보전으로 들어가는 누각

 

정족산성에서 보는 전등사 전경

 

 

건물마다 붙어있는 편액 모음   

 

 

동문에서 시작되는 정족산성을 올라가며 보는 건물은 템플스테이를 위해 신축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족산성을 따라 올라가며 한 바퀴 돌아본다

 

 

 

두 명이 겨우 지나칠 정도로 제일 작은 북문

 

삼랑성 정상

 

 

 

 

 

서문에 대문까지 달려 있는 제법 큰 문이다

 

 

 

 

 

정족산성은 불과 2km가 조금 넘는 아담한 산책로로 사계절 어느 때라도 산책하기 좋은 코스다.

 

 

 

산의 지형에 따라 성을 만들다 보니 모난 곳은 모난 대로 빙 둘러 쌓는다

 

 

 

 

 

성루까지 있는 남문

 

이 고개만 넘어가면 원점인 동문이다

 

 

전등사를 방문하여면 주차비 2천원에 문화재 관람요금 3천원을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