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7. 토 09:56~15:08 (전체 거리 10.4km, 전체 시간 05:11, 휴식 시간 50분, 평균 속도 2.5km/h) 눈 온 뒤 흐림
5년 전 조령산 산행을 끝내고 조령3관문으로 내려올 때 보이던 마패봉과 신선봉이 참 멋졌다.
마을 주민에게 산 이름을 물어보고 조령산 신선암봉과 달리 이곳은 신선봉이라고 부른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언젠가 오르겠단 생각은 오랜 세월을 보내고 이제야 산행에 나서게 되었으니 기다린 보람이 있다.
주흘산에서 분기한 마패봉과 신선봉은 산 이름을 갖지 못한 채 봉우리 이름으로 불리니 대단한 위세다.
주흘산 한 자락이라 주흘산 마패봉, 주흘산 신선봉으로 말할 수 있는데도 주흘산과 별개인 듯 신성봉, 마패봉으로 불린다.
신선봉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4km 거리의 조령산에도 巖자 하나가 더 붙은 신선암봉과 마주 보고 있다.
주 초반까지만 해도 괜찮다던 주말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며 눈이 온다니 첫눈을 산에서 맞을 수도 있겠다.
첫눈을 산에서 맞으면 서설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날이 풀리면 진눈깨비나 비로 변할 수도 있겠다.
눈 온 산이야 좋겠지만 내리는 눈비를 맞는다는 건 옷과 배낭이 젖으니 사실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다.
연어봉 등산 겸 조령3관문 트레킹 코스
이번 산행은 연어봉-신선봉-마패봉에서 조령 3관문으로 빠지는 A코스와 역순으로 진행하는 B코스로 공지했다.
새벽부터 시작된 진눈깨비와 눈으로 B코스는 생략하고 A코스만 진행한다.
산악회 버스는 거의 들머리 입구까지 잘 도착했으나 코너를 돌 때 도로 가장자리로 물이 빠지는 경사진 배수로에 뒷바퀴가 빠졌다.
경사진 곳이라야 겨우 2~3cm 정도로 별거 아닌데도 올라오질 못한다.
남자 회원들이 모두 내려 버스를 밀고서야 겨우 탈출에 성공했다.
타이어를 보니 전부 마모가 돼 스케이트 칼날처럼 매끄러워 눈길이 도리어 미끄럼틀이 된 것이다.
운전기사가 알뜰하게 타이어를 쓰다 보니 이런 엉뚱한 결과를 초래했다.
나중에 귀로를 걱정해 서너 명이 지자체에 전화해 제설작업을 요청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보통은 신선봉과 마패봉으로 오른 후 조령 3관문으로 하산하는데 이번엔 코스를 더 길게 잡아 연어봉으로 오른다.
올겨울 들어 제법 많이 내린 첫눈을 이곳 연어봉으로 오르며 본격적인 겨울 등산을 시작한다.
눈이나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보고도 아이젠을 준비하지 않았다.
눈은 4~5cm 정도 내렸어도 아이젠 없이도 조심조심 오를 수 있으나 조금 고도가 높은 능선에 오르자 바람이 너무 드세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인테그랄 디자인 우비 위로 벨트로 고정했어도 바람에 벗겨져 깃발처럼 휘날린다.
그렇게 흩날리는 우비와 씨름하다 보니 연어봉이 코앞이다.
연어처럼 생긴 연어바위가 언제부턴가 연어봉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렇게 산에선 족두리봉, 향로봉, 시루봉, 수리봉 등 동물나 사물의 형태와 비슷해 불리는 이름이 제법 많다.
연어봉 표지석 뒤로는 신선봉 가는 능선이다.
등산을 시작할 때도 제법 많은 눈이 내려 카메라는 버스에 두고 폰으로만 사진을 찍었다.
이 소나무 자태가 제법 멋진데 본줄기가 죽는 바람에 생명을 다할 때까지 옆으로 클 수밖에 없다.
더 자라며 키도 따라 커지긴 하겠으나 옆으로만 클 수밖에 없어 더 멋진 명품 소나무가 되리라.
강풍에 더 나가기도 힘들고 습설로 눈이 미끄러워 연어봉에서 더 이상 진행하기를 포기하고 하산했다.
내려가는 길 역시 온통 눈세상이다.
기껏 연어봉 하나로 산행을 끝내고 귀가할 수 없어 조령 3관문까지 다녀오기로 한다.
통상 문경새재로 알고 있었으나 괴산군에서 이 지역 지명을 따 연풍새재라고 한다.
지도를 검색해 보니 마패봉에서 조령 3관문으로 내려와 조령산으로 타고 올라가는 능선이 괴산과 문경의 경계선이다.
그러니 조령 3관문의 절반은 괴산과 경계선에 걸쳐있으니 연풍새재란 연고를 주장하는 것이다.
마치 충주호를 두고 청풍지역에서 청풍호라 끝끝내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이제부터 카메라를 휴대하며 주변 풍경을 찍는다.
연어봉에 오를 때만 해도 그렇게 눈을 뿌리던 세찬 바람도 하산하자 모두 그치고 잠깐이나마 하늘도 열렸다.
기습적으로 쌓인 눈에 몇몇 차량이 꼼짝 못하고 도로를 점령했다.
고사리마을에 산채로 신이 된 소나무
저 어디쯤이 신선봉일 텐데, 5년을 벼르고 별러 왔으나 첫눈으로 오르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겼으니 언젠가 다시 와야 한다.
고사리마을을 지나 조령 3관문으로 가는 눈길
과거 길의 중심인 조령
예로부터 영남에서는 많은 선비가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를 보러 서울로 떠났다.
서울 가는 길은 추풍령, 죽령, 조령(새재)가 있는데,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미끄러진다 하여 영남의 선비들에겐 새재가 과거급제를 위해 넘던 주요 고개다.
연풍조령정
괴산에서 조령의 연고권을 주장하기 위해 연풍이란 이름을 넣어 연풍 조령정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워낙 문경새재로 알려져 대부분 사람은 여전히 문경새재로 부를 것이다.
백두대간을 북진하다 보면 이화령에서 조령산을 타고 올라 조령에서 마패봉을 거쳐 조흘산 부봉을 찍고 포암산으로 방향을 튼다.
이런 조령은 백두대간을 지나는 주요 길목이자 영남에서 서울로 가며 넘어야 하는 필수 코스인 셈이다.
문경새재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꼽혔고, 도립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조령 3관문인 조령관
괴산 방향인 연풍에서 본 조령관 양옆으로 성벽이 둘러싸여 이 길로 들어오는 양쪽 성벽에 병사 수십 명만 지켜도 난공불락의 요새로 변한다.
잠깐 임진왜란으로 돌아가 당시 상황은 어땠는지 엿보자.
신립은 충청도에서 말을 징발하고 8천 명의 병력을 얻었는데 이 일대에서 모을 수 있는 최대의 병력이다.
그는 기세좋게 탄금대 앞을 지나 충주 단월역에 군사를 주둔시켰다.
이일이 충주에서 패전했다는 보고를 받은 신립은 새재 정찰에 함께 나선 충주목사 이종장과 종사관 김여물이
새재의 지리적 이점을 보아 새재에서 싸우자고 했으나 적은 보병이고 우리는 기병이니 들판에서 싸우자고 고집한다.
신립은 군사를 끌고 충주성으로 들어간 후 밤에 새재에 갔던 정찰병은 적군이 새재에 들어왔다고 보고했다.
쏜살같이 말을 타고 달려가 새재의 동정의 살폈으나 적의 움직임이 안 보이자 정찰병을 거짓 보고했다며 죽여버렸다.
다음날 신립은 군사를 이끌고 탄금대에 나와 평지에 배수진을 쳤다.
이때 군관 이운룡이 울면서 "죽을 땅에 들어가는 것이라."라며 울면서 만류하자 곤장 30대를 내렸다.
왜병 1번대는 문경을 가볍게 접수하고, 이런 천혜의 요새를 버린 신립을 비웃었다.
탄금대에서 맞붙은 신립은 완전히 포위돼 바늘 하나 빠져나가지 못할 형세에 처해 결국 탄금대 바위에서 떨어져 월탄에 빠져 죽었다.
함께 항전을 벌이던 이종장, 김여물, 이운룡도 끝내 최후를 맞이한다.
이렇게 조선 최대의 전력이 완전히 궤멸하며 왜놈들이 서울까지 무인지경으로 밀고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다시 펼쳐 든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중 신립의 새재와 관련된 부분을 끄집어 읽으며 가슴이 답답함을 느낀다.
정치가는 정치를 잘 하고, 군인은 전쟁에서 전략 전술에 능해 항상 승전해야 참된 군인이다.
성밖이든 안이든 세상은 온통 설경이니 이제 눈세상이다.
문경쪽에서 본 조령관
조령 3관문에서 오늘 오르고자 했던 마패봉까지는 불과 900m에 45분 거리다.
이 이정표를 보고 잠깐 마패봉을 다녀올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눈길이라 위험한 데다 시간이 더 걸릴 테니 포기한다.
이렇게 5년의 기다림은 눈과 바람으로 헛되이 흐르고 말았으니 세상일이 다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조령 3관문은 이렇게 천혜의 요새인데, 멍청한 신립의 오판으로 서울로 가는 지름길을 열어줘 국토를 유린하게 만들었다.
어느 법인이 조림해 관리하는 사유림이다.
나무가 곧게 잘 자라 보는 눈이 시원하고 공기는 청량하니 어디든 이렇게 수목이 잘 관리되는 지역이 많으면 좋겠다.
조령관에서 조령산 오르는 길목의 산신각
영남제3관인 조령관을 돌아 다시 버스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윗글에서 어사 박문수가 매패를 걸어놓았다는 마역봉은 지금 마패봉으로 불린다.
괴산군청 관광기획팀에 근무하는 맹주사의 재치가 번뜩이는 현상 공고문
올라오던 길 대신 조령산 자연휴양림쪽으로 하산하며 색다른 뭔가를 기대한다.
조령산 자연휴양림에 설치된 숙박 시설은 28동에 42실이 구비되어 있다.
조령산과 신선봉, 마패봉, 문경새재, 주흘산을 배경으로 두고 있으니 세상과 동떨어진 이곳에서 주변 풍광을 즐기면 참 좋겠다.
비수기인 주중엔 4인 기준 4만원, 성수기인 주말엔 조금 더 비싸다.
소나무도 아닌 이 상록수에 내린 눈이 사슴뿔을 연상케 한다.
우려했던 도로는 제설작업과 기온 상승으로 차량이 다닐 정도로 정리가 됐다.
총무님이 많은 정보 검색 끝에 찾아낸 청국장 식당에 들러 맛있는 식사에
덤으로 파랑새 카페지기님이 부침개를 한턱내는 바람에 푸짐한 식사가 되었다.
계절을 건너뛰어 세 계절 만에 다시 찾은 산악회의 신선봉 마패봉 산행은 다시 숙제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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