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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병인양요의 격전지인 김포 문수산성 탐방

by 즐풍 2023. 10. 19.

2023_162

 

 

2023. 10. 12. (목)  12:43~15:18, 2시간 35분 산행, 10분 휴식, 6.6km 이동

 

 

문수산성은 꼭 10년 전인 2013년 10월 5일에 다녀왔다.

그때는 오후 2시에 산행을 시작해 문수사로 하산하며 날이 저물어 북문은 들리지 못했다.

이번엔 문수산성 전구간을 돌며 그때 없던 곡성인 용도가 새로 복원된 것을 보았다.

앞선 임금이 병자호란 때 청군에 모질게 당한 설움을 털어내고자 숙종 때 쌓은 산성이다.

이후 개화기를 맞아 배를 타고 들어온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거쳐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조선의 군사와 격전을 치른 곳이다.

그때 조선군은 프랑스군 3명을 사살했으나 신무기에 밀릴 수밖에 없어 패퇴하자

적군에 의해 북문과 서문, 남문이 모두 파괴된 걸 100여 년을 훨씬 넘겨 북문과 남문은 복원되었다.

하지만 도로가 개설되며 북문과 남문 사이의 성벽과 서문은 달리 복원할 방법이 없다.

 

 

문수산성 등산코스

 

 

문수산성 입구로 가기 전 우측에 남문인 희우문이 보여 올라가 보지만 성벽을 따라 오르는 구간은 막혔다.

사진 두 장만 남긴 채 문수산 산림욕장 방면으로 이동한다.

 

 

ㅁ 문수산성(文殊山城)

     사적 제139호 

 

강화도의 갑곶진을 마주 보고 있는 문수산의 험준한 정상부에서 서쪽 산줄기를 따라 문수골과 산성포의

두 계곡을 감싸 안고 해안지대로 이어지는 산성이다.

조선 숙종 20년 (1694)에 쌓았으며 처음에는 둘레 2,400m, 성가퀴 2,173곳, 성문 3곳이 있었다.

이후 순조 12년(1812)에 대대적으로 고쳐 쌓았는데 성벽은 직사각형 또는 정사각형으로 다듬은 돌로

단단하게 쌓았으며 그 위에 몸을 숨길 수 있는 낮은 담인 성가퀴를 둘렀다.

성문은 공해루控海樓, 희우루喜雨樓. 등 문루 셋과 작은 출입문인 동문東門, 아문亞門이 셋이 있었는데

공해루는 갑곶진과 마주 보는 해안에 있어 강화에서 육지로 나오는 관문 구실을 하였다.

고종 3년(1866)의 병인양요 때에는 프랑스군과 치열하게 격전을 치른 곳으로,

이 싸움에서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가 모두 파괴되었다.

총길이가 6.123m인 성곽의 남은 구간은 4,640m이고 없어진 구간은 1,483m이다. 

 

 

Munsusanseong Fortress in Gimpo

 

This fortress is characterized by a wall running from the rugged summit of Munsusan Mountain overlooking

the Gapgotjin Fort of Ganghwado Island along the western mountain ridge to contain two valleys of

Munsugol and Sanseongpo before reaching the coastal area.

The fortress was built in 1694, and consisted of walls whose total length was 2,400 meters, 2,173 parapets,

and three main gates.

The fortress underwent a major renovation work in 1812 in which the walls were reinforced by the use of

roughly hewn square and rectangular stones.

The renovated fortress also had three main pavilions, including Gonghaeru and Huiuru,

and three auxiliary gates, including Dongmun and Amun.

Of the three main gates, Gonghaeru overlooking Gapgotjin played the role of the gateway linking t

he island with the Korean main land.

In 1866, the Korean troops guarding the fortress fought hard against the French troops invading it

and witnessed the destruction of the walls and gate buildings standing along the coast.

The total length of the fortress was 6,123 of which 4,640 meters are remaining. (안내문)

 

 

희우루 건너편엔 강화도로 들어가는 도로가 보인다.

 

산림욕장에서 산행을 진행하다 보니 문수산성 절반을 놓치겠단 생각에 급히 방향을 틀어 문수산성을 만났다.

 

 

문수산성의 부속시설  Ancillary facilities of Munsusanseong Fortress

 

문수산성은 문터 일곱 군데 남문, 북문, 서문, 동아문, 남아문, 서아문, 북아문를 비롯해 장수가 군사를

지휘하는 장대,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취약점에 해당하는 곳에 성벽을 연결하여 설치한 용도甬道

등의 시설을 갖추었으며, 돌로 쌓은 대규모 산성이다.

성 밖에는 서문인 공해루와 연결되는 갑곶나루 선착장인 석축로(경기도 기념을 제108호)가 있고,

성 안에는 문수사(경기도 전통 사활 제62호)가 있다.

성안에 문수진, 무검정, 제승당, 남고南庫, 내사內舍, 진사鎭舍, 전대동고田大同庫, 마담馬潭 등의 군사 시설이

있었으며, 남문의 동남쪽에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모두 확인되지 않는다.

 

Munsusanseong Fortress used to have three main gates and four ancillary gates, a command post,

and paths leading to vulnerable points on its wall.

Outside the fortress is a stone road (Gyeonggi-do Monument No. 108) running from the West Gate to Gapgot Quay,

with Munsusa Temple (Gyeonggi-do Traditional Temple No. 62) within the fortress.

It is said that various military facilities - including Munsujin Fort, Mugeomjeong Pavilion, Jeseungdang Hall,

Namgo Warehouse, living quarters for troops, and a drinking well for horses - used to be situated within the fortress.

                                                                                                             (안내문)

 

 

문수산성은 비교적 최근인 조선 숙종 때 쌓은 산성이라 제법 규모가 있고 정밀한 편이다.

 

등로와 조금 벗어난 곳에 휴식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문수산성의 성벽城壁  Ramparts of Munsusanseong Fortress

 

문수산성의 성벽은 서벽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인 윤곽이 확인된다.

북문에서 정상부로 향하는 지점에는 깬돌을 이용하여 세운 성벽이 13단까지 남아 있고,

정상부에서 남문 방향으로는 암석을 사각형으로 다듬어 쌓았는데 성벽 구간별 차이 또는 고쳐 지은

시기별 차이를 보인다.

북문 쪽 성벽은 40~ 60cm 크기의 자연석과 깬들을 수평을 맞추어 쌓았으며,

석재 사이의 틈에는 5~ 12cm 크기의 쐐기돌을 이용하였다.

남벽은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으며, 2007년 고려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한 결과 기본적인 양상은

지형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9~14단, 높이 250~300cm 내외로 쌓은 것을 확인하였다.

성벽 곳곳에는 명문이 많이 남아 있다.

명문에는 성벽 구간별 명칭과 그 구간 성벽 쌓기에 동원된 군대 이름(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이 적혀 있다.

                                                                                                                               (안내문)

 

 

 

구렁이 담 넘아가듯 산성도 구비구비 돌고 돌아 능선을 넘어간다.

 

산성을 조금 비껴난 곳의 소나무는 산성을 쌓을 즈음, 아니면 그 이후에 자랐는지 모른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젊은 부부가 요기를 하며 쉬고 있다.

 

 

문수산성의 문지門址  The Sites of the Gates of Munsusariseong Fortress

 

문수산성에는 소규모 출입 시설인 아문 네 군데를 포함하여 총 일곱 군데의 문터가 있다.

남문은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에 의하여 파괴되어 무사석 일부와 홍예석만 남아 있던 것을 홍예와 육축부를

고치고 문루를 복원하였다.

북문은 깬돌을 이용하여 쌓은 벽면이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하였다.

서문터는 발굴 조사 등을 통하여 기반 시설이 확인되었으며, 정밀한 발굴 조사를 통하여 성격을 파악한 후

복원할 예정이다.

아문은 정상부에 동아문과 남아문 두 군데가 있으며, 서아문과 북아문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남아문의 성 안쪽은 사각형으로, 성 바깥쪽은 홍예식(무지개 모양)으로 장대석을 이용하여 세웠다.

동아문은 외면이 무너져 원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으나, 남아문과 같이 홍예식의 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 홍예 : 무지개 같이 휘어 반원형의 꼴로 쌓은 구조물 / 육축부 : 석축의 기단 부분

 

Munsusanseong Fortress used to have three main gates and four ancillary gates,

but the South Gate was destroyed by French troops during their attack in 1866.

Recently, however, work was carried out to restore parts of the South Gate, including the gate tower,

and the North Gate.

The West Gate will be restored after an excavation survey.

Of the four ancillary gates, those in the east and south remain, although the original form of the former is

indiscernible, and is only presumed to have been an arch-shaped one like the gate in the south.

Records point to the existence of ancillary gates in the west and north, but few traces of them are visible. 

                                                                                                          (안내문)

 

복원되었다는 남아문 바깥쪽은 홍예문이고 안쪽은 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이 홍예문이 안쪽이라고 생각했는데, 김포시청 담당과 통화해 보니 바깥쪽이라 한다.

즐풍이 착각했나 보다.

 

 

아문(홍예문) | 亞門(虹霓門)  Postern (Arched Gate) 

 

옛 지도를 보면 문수산에는 총 7개의 성문 즉, 문루 3개와 아문亞門 4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아문은 암문暗門이라고도 하며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의 눈을 피해 사람과 가축이

통과하고 양식 등을 나르던 곳이다.

현재 4개의 아문 가운데에서 서쪽과 북쪽의 아문은 잔존하지 않으며 남쪽과 동쪽의 암문만 남아있다.

이곳은 1993년에 복원된 남南아문으로 바깥쪽이 아름다운 무지개 모양의 홈예식 성문의 형태를 하고 있다.

성문 안쪽의 윗면과 바닥에는 기둥을 세우기 위한 확確이 있으며, 좌우측 허리 부분에도 홈을 파 빗장을

걸 수 있도록 하였다.  

 

According to an old map of Ganghwado Island, there were in Munsusan Mountain seven gate buildings,

three main gate pavilion and four posterns.

Called Amun ("secondary gate") or Ammun ("shady gate") in Korean, the posterns were built in a concealed

location of a fortification to allow inconspicuous, safe passage of inhabitants, household animals and foods

in the event the fortress was besieged by the enemy.

Of the four original posterns, only two, one in the south and the other in the east, are remaining today.

The south postern restored in 1993 is marked by a beautiful rainbow ceiling, a pair of stones on the ceiling

and the floor with sockets to insert columns, and another pair of sockets made on both sides to fit the bolt.

                                                                                                               (안내문)

 

 

북한산성이나 남한산성 외 많은 산성을 다녀 봐도 대부분 암문暗門이라고 하는 데,

유독 김포의 문수산성만큼은 아문亞門을 즐겨 쓰니 다소 낯설다.

 

 

 

드디어 문수산성의 장대가 보이기 시작하니 정상이 멀지 않다.

 

 

 

 

삼국시대의 문수산성  Munsusanseong Fortress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문수산성은 최근까지 강화의 갑곶진과 더불어 조강祖江을 통한 외세 침입을 막고 한양 일대를 수호하기 위하여

세워졌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2014년 고려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한 결과 이미 삼국 시대신라에 산성을 세웠음이 밝혀졌다.

삼국시대 성벽은 문수산의 꼭대기와 산등성이 높이의 8/10에서 9/10에 해당하는 부분을 따라 돌로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길이는 약 300m, 내부 면적은 4,631㎡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 주변에서 발견된 흙으로 만든 말 1점, '찍은 무늬의 토기 조각' 및 '가로무늬', '문살무늬의 기와 조각' 등

7세기~9세기의 유물을 근거로 성벽을 쌓은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이와 같은 유물들이 계양산성, 동성산성, 수안산성 및 강화외성 등에서 출토되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문수산성 또한 주변의 산성들과 같은 시기에 성곽의 기능을 수행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 테뫼식 : 산의 봉우리를 둘러쌓아 만든 산성  

  조강祖江: 한과 임진강이 합쳐지고 나서 황해(강화만)로 흘러드는 강

 

Until quite recently, Munsusanseong Fortress, along with Gapgotjin Fort on Ganghwado Island,

was thought to have been built to repel invaders and protect Hanyang (capital of Joseon).

However, an excavation survey carried out in 2014 by the Korea Institute of Heritage revealed

that it was already built in the Silla period (57BC - 935 AD).

The part of the fortres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during the Silla Period surrounds the summit,

running along eight or nine-tenths height of the ridge for about 300m.

The relics found at the site, including a clay horse, earthenware fragments containing stamped patterns,

and pieces of roof tiles with horizontal patterns and door frame patterns, have enabled archaeologists

to date the construction of the fortress to somewhere between the seventh and ninth century.

Similar relics have also been found in other nearby fortresses including Gyeyangsanseong,

Dongseongsanseong, Suansanseong, and the Outer Wall of Ganghwa Fortress.

Thus, Munsusanseong Fortress is presumed to have served a similar purpose to those fortresses.

                                                                                                                   (안내문)

 

 

장대를 둘러싼 성벽과 여장, 홍예문을 최근에 복원하면서 벽돌인 전성(塼城)으로 처리했다.

벽돌은 규격이 일정해 모양이 아름답고 정밀하게 쌓는 이점이 있지만, 고증을 거친 것인지 모르겠다.

 

거리를 두고 조망하는 장대

 

 

김포 문수산성 장대 | Command Post Site of Munsusangseong Fortress in Gimpo

사적 제139호, 지정일: 1964.8.29.

 

해발 376m의 문수산에 있는 문수산성은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 입구를 지키기 위해 숙종 20년(1691)에 돌로

쌓은 산성으로, 고종 3년(1863)에 치른 병인양요의 전쟁터이기도 하였다.

이곳은 문수산 동쪽의 가장 높은 지대로 조선 시대 장수가 주변 정세를 파악하여 지휘하던 장대가 있던 곳이다.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옛 지도를 보면 문수산성에 남문[희우喜雨樓], 서문[拱海樓], 북문 등 문루 3개와

비밀 통로인 아문 4개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는 전쟁 때 사라졌는데, 지도에는 공해루의 위쪽으로 성내의 시설물들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어 당시에 병영터였음을 알 수 있다.

 

One of the two major defense facilities, the other being Gapgotjin Ferry, built to protect the strategic area

of Ganghwado Island, Munsusangseong is a fortress with stone walls built in 1694 (the 20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ukjong during the Joseon Period) around Munsusan Mountain (376m).

The fortress became a historic venue of a battle called Foreign Disturbance of 1866, a battle between

the French naval forces.

The main command post of the fortress was located on the highest point in the east of Munsusan Mountain.

According to a late 19th century map, the fortress had three main gate pavilions, one in the south gate (Huiuru),

west gate (Gonghaeru), and north, and four posterns.

A gate pavilion and the wall built along the coast were destroyed during the battle.

The map also contains details of the defence facilities clustered above Gonghaeru,

revealing that the area had been a military camp.  (안내문)

 

 

장대에서 바라보는 북한지역의 곡창지대다. 벼 수확을 끝내며 논은 휑하니 바닥만 보인다.

식량이 부족한 북한지역에서 어쩌면 제일 넓은 곡창지역일지 모른다.

 

확대한 해조강리 곡창지대

 

 

김포 문수산성(文殊山城)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 산 36-1번지 일원 문수산에 위치하고 있다.

성벽은 문수산의 정상에 서 능선을 따라 염하까지 축성한 포곡식의 석축산성이다.

문수산은 김포관내의 최고봉으로 정상부에서는 김포 시내뿐 아니라 강화, 인천, 서울, 고양, 파주

그리고 옹진반도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군사적인 요지이며, 한강, 임진강, 예성강

그리고 서해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문수산성 남쪽에는 남산봉수, 덕포진, 수안산성, 수안봉수, 대릉리토성, 백선산봉수 등이 위치하며

마주 한 강화에는 하음산성, 고려중성, 강화산성, 강화외성, 덕진진, 초지진 등이 위치하고 있다.

 

문수산성에 대한 문헌기록은 『일성록, 대동지지, 여국비지, 『사찬읍지조선왕조실록 등에

산성의 축조시기, 배경에 대한 기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강화도로 천도하기 전 길목이 봉쇄됨에 따라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게 되어 이에 대한

대비로 숙종 20년(1694)에 축조하였다.

기록에는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삼군에 명하여 산성을 쌓게 하였다.

서•남•북문이 있었으며, 강화부에 소속되어 별장 한 사람과 군관 161명, 사병 56명, 돈군 6명,

수첩군 80명, 모입군 72명이 성을 수비하였다.

순조 12년(1812) 대대적인 중수가 있었으며,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강화에 상륙하여

강화성을 함락시키고 서울로 진입하기 위해 문수산성을 공격하였으나 한성근의 수비군에게 격퇴당했다.

이때 성내의 민가가 유린되고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가 모두 파괴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의 성벽과 시설물

등은 산등성이를 따라 일부 잔존하고 있다.

 

현재 성벽의 총둘레는 6,210m이며, 면적은 211,570㎡에 이른다.

북문과 남문에 대한 복원공사를 완료하였으며, 부분적으로 성벽에 대한 보수공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그간의 조사를 종합하여 보면, 문수산성에는 문지가 6개소, 장대지 등이 있으며 해안가에 갑곶나루 선착장

석축로, 성내에 문수사 등이 위치한다.

문지 중 작은 아문이 3개소이며, 북문지와 남문지는 복원되었다.

문지에는 공해루(서문루), 취예루(取豫樓, 북문루)의 문루가 있다.

이외에 강화부지도를 보면 산성 내에 문수사를 제외하고 5동의 건물이 존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수산성의 성벽은 암반을 정지한 후 세장방형의 소형 할석을 놓아 수평을 맞춘 다음 약 20cm 정도 들여서

기단석을 놓고 그 위에 성돌을 쌓아 성벽을 축조하였다.

지대석의 크기는 구간마다 약간 차이가 있는데 약 30~100 x40cm이며 장방형의 석재를 이용하였고,

그 위에는 더 작은 석재를 사용하여 쌓았다.

성돌은 수평을 맞추지 않고 난층쌓기를 하였고 거의 수직에 가깝게 쌓았으며 면석의 크기는 일정치 않다. 

 

성벽이 산의 능선상이 아니라 평지에 축조된 서벽의 경우 약간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성벽의 기저부에 기단석을 두지 않고 약 1m 크기의 화강암 석재를 사용하여 성벽을 쌓았다.

서벽과 남벽이 접하는 곳에 성벽의 한 구조물인 치(雉)가 노출되었다.

성벽에서 돌출된 치의 길이는 16m, 폭은 10m이며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문수산성 중 가장 높은 최정상부는 해발 376m로 서해, 강화도, 파주, 서울, 김포, 인천 등이 한눈에 조망된다.

현재 해병대 관측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장대지가 있던 지점은 헬기장으로 이용되고 있어 확인하기 어렵다.

지표조사에서 통일신라시대 기와 편과 조선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다.

                                                                                        (출처_한국고고학전문사전 성곽·봉수편)

 

밖에서 보는 문수산성 장대이다.

문수산성에 장대가 하나이니 장대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동쪽 끝에 있으니 동장대라 하면

방향 가늠은 물론 더 친숙한 느낌이 들겠다.

한때 북한산만 300여 번 다니며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니 하는 명칭에 익숙하다 보니 장대는 어색하다.

 

 

 

 

 

 

군사적 요충지 문수산성 Munsusanseong Fortress, a strategic point

 

문수산성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병자호란 이후의 일이다.

정묘호란 당시 우리 군이 수전에 약한 청군을 피해 강화도로 피난하여 국난을 극복했지만, 병자호란 때 수군을

재정비하여 공격해 온 청군에 강화도가 함락되면서, 강화와 통진지역을 방어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문수산성은 내륙으로부터 강화도가 침공받을 경우를 대비하여 세워졌으나,

병인양요 때는 한성 서울을 지키는 전초 기지로 인식되었다.

조선 시대 때는 적의 침공 방향에 따라 강화도의 길목이 되기도 하고, 한성의 길목이 되기도 하는 등 전락적

요충지로 인식되었다 

 

The Joseon government recognized the strategic importance of Munsusanseong Fortress after the Qing

invasion of Korea in 1636.

When Later Jin of China invaded the country in 1627, the Joseon King fled to Ganghwado Island,

taking advantage of the invaders weakness in naval warfare.

When they invaded the country for the second time in 1636 and occupied Ganghwado Island, however,

the necessity of protecting Ganghwa and Tongjin arose.

Munsusanseong Fortress was used to defend Ganghwado island from an enemy advancing from inland.

During the French invasion of Ganghwa in 1866, the fortress was regarded as an important forward

base in the defense of Hanseong (present-day Seoul). (안내문)

 

 

강 북쪽 아파트가 즐비한 곳이 파주 운정쯤 될까?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지역이다.

 

성동저수지

 

동아문을 밟기도 전에 멀리 화려한 곡성이 눈에 띈다.

 

 

김포 문수산성 동아문 金浦 文殊山城 東亞門

사적 제139호 

 

옛 지도를 보면 문수산에는 총 7개의 성문 즉, 문루에 3개와 아문 4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는 4개의 아문 가운데 홍예식 형태(아치형)의 남아문과 평거식 형태(장방형)의 동아문만 남아있다.

동아문은 문지 정면이 지반침하로 훼손되어 상부 인방석引枋石 등이 유실된 상태로 있던 것을

2014년에 흩어져 있는 잔존 석재를 수습하여 보수하였다.

아문은 암문暗門이라고도 하며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의 눈을 피해 사람과 가족이

통과하고 양식 등을 나르던 곳이다. 

 

Dongamun Gate in Munsusanseong Fortress, Gimpo

 

According to an old map, there were seven fortress gates in Munsusan Mountain,

i.e, three gate pavilions and four ancillary gates.

At present, only two of the ancillary gates remain: Namamun Gate with the arched top

and Dongamun Gate with the rectangular top.

In 2014, the foundation of Dongamun was restored using stone fragments at the site.

Ancillary gates were used as hidden passages built in a seduded place of the fortress walls for people

and cattle away from the enemy's detection. (안내문)

 

당겨 본 곡성의 정상부

조금이라도 더 걷기 싫어 렌즈만 당겨본다.

 

10년 전에 없던 곡성曲城을 새로 복원했다.

김포시에서는 용도甬道라는 표현을 썼지만 즐풍은 북악산과 인왕산의 곡성과 비슷한 크기에

모양까지도 비슷해 한양도성의 예에 따라 곡성이라 하고 싶다.

용도는 주로 읍성의 옹성 위 여장 안쪽의 이동 통로나 수원화성의 서남암문에서 서남각루까지

짧은 거리의 좁은 통로 같은 경우에 흔히 쓰는 용어다.

 

이곳엔 산부추 자주색 열매가 한껏 열렸으니 내년엔 제법 소복하게 자라겠다.

 

이곳은 김포의 작은 평야인데 절반 정도가 수확을 마쳤다.

 

북문이 가까워지자 성벽 위는 제법 넓은 게 걷기 좋다.

 

잠시 성벽을 내려가 보니 최근에 복원한 구간이라 벽돌을 짜 맞춘 듯 정밀하다.

 

북문을 만나며 문수산성도 끝난다.

 

안쪽의 콘크리트 벽은 현대전을 위한 군 참호로 문수산성에 기생하고 있다.

산성의 가치를 모를 때 저지른 실수라 우리는 용서해야 한다.

 

이번 산행의 마지막 구간인 북문인 취예루(取豫樓)이다.

 

 

 

 

병인양요丙寅洋擾의 격전지, 문수산성 

Munsusanseong Fortress, site of the French invasion of Ganghwa in 1866

 

문수산성은 갑곶진과 함께 강화의 입구를 지키던 조선 시대의 성으로 병인양요의 격전지였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점령하자 프랑스군이 내륙으로 침략하는

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하여 한성근을 순무 초관에 임명하고 문수산성의 수비를 강화하였다.

같은 해 10월 프랑스군 70여 명이 바다를 건너오자 문수산성에 있던 조선군은 프랑스군 3명을 사살하고

2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하지만 무기의 열세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문수산성에서 퇴각하였다.

조선군이 퇴각하자 프랑스군은 문수산성의 남문과 성벽을 파괴하고 민가 30여 호는 불사른 뒤

강화로 다시 돌아갔다.

조선군은 결과적으로 이 전투에서 패전했지만 프랑스 군대에 처음으로 일정한 타격을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안내문)

 

 

 

문수산성 북문은 복원했으나 도로가 생기며 남문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더 이상 복원할 수 없다.

도로가 생기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불과 두 시간 30여 분의 짧은 등산과 역사의식으로  문수산성의 역사적 평가를 내리기엔 부족하다.

안내문을 읽고 뒤적거리며 짧은 편린이나마 가슴에 담아두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