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_138
2021.9.22 (수) 오후 5시 30분부터 40분 탐방
여수에서 6개월을 지내는 동안 많은 곳을 다녔어야 했는데, 게으르다 보니 별로 다니지 못했다.
지나 놓고 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추석 연휴를 맞아 추자도 이틀에 나머지는 전부 전라남·북도에 할애했다.
그중에 불갑산, 선운산, 변산, 내장산, 무등산, 승봉산, 유달산을 제외하면 관광은 별로 다니지 못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는 고창읍성과 신안의 섬티아고 순례다.
섬티아고에선 갓고을 센터에서 함께 생활했던 선생님 내외분을 우연히 만나며 놀라운 인연을 이어갔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별도로 할 기회가 있으므로 그때 다시 기록할 예정이다.
고창 고인돌 유적지 탐방을 후다닥 해치우고 뛰듯 달려와 무장읍성 탐방에 나선다.
□ 무장읍성
무장면 성내리에 있는 이 성은 1991.2.21 사적 제346호로 지정되었으며,
성의 남문인 진무루에서 해리면으로 가는 도로의 좌편까지 뻗어 있다.
성의 둘레는 약 1,400m, 넓이는 43,847평이다.
조선 태종 17년(1417)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 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만여 명을 동원, 흙과 돌을 섞어 축조하였다.
성내에는 객사, 동헌, 진무루 등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고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유구들이 산재해 있다.
성문 위엔 진무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성은 허물어져 객사와 동헌, 남문인 진무루가 전해질뿐, 동문과 해자 사직단 등은 흔적만 남아 있다.
이 성은 원래 돌로 축조한 석성이었으나 훗날 허물어진 곳을 흙으로 보강하여 토성이 되었다고 한다.
1915년에 발견된 「무장읍지」에 의하면 조선 태종 17년(1417)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 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0,000여 명을 동원하여 그 해 2월부터 5월까지 만 4개월 동안에 축조했다고 전한다.
[출처_고창군청]
무장읍성 정문인 진무루가 아니라 공사 중인 성벽 옆으로 오른다.
내비 양이 길을 잘못 알았나 보다.
읍성을 시계 방향을 돌게 되므로 보이는 진무루는 마지막에 도착하게 된다.
성 안 풍경
고창읍성과 달리 이곳 성벽은 토성으로 되어 있다.
성벽은 봉긋한 형태에 잔디가 잘 자라 보기 좋다.
지형에 따라 높낮이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걷는 맛도 좋다.
이곳은 제법 고른 형태의 성벽이다.
성벽으로 오르는 계단을 설치해 훼손을 막고 있다.
이렇게 소나무가 운치 있게 자리니 보기 좋다.
‘무장’은 고려시대 때 무송현과 장사현의 두 고을 앞 자를 따 붙인 이름이다.
서해안을 따라 왜적의 침입이 빈번하자 두 고을을 하나로 합쳐 대비한 것이다.
또한 읍성을 축성한 후 관아가 들어서며 행정과 군사적 기능이 작동했다.
무장읍성엔 한때 동학군이 주둔했다고 한다.
전북 고부에서 봉기한 동학농민군은 1894년 5월 황토현 전투에서 전라감영 군을 무찌르고 대승을 거두게 된다.
동학농민군은 흥덕과 고창을 거쳐 무장읍성에 재 집결한 것이다.
이때 동학군을 옥을 부수어 억울하게 갇혀있던 동학교도 44명을 석방한다.
성 밖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둘레 2천127척의 해자(垓字)를 팠다고 한다.
해자는 지금도 너비 4m, 길이 574m가량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동문은 한창 복원 공사 중이다.
남문인 진무루와 마찬가지로 옹성까지 쌓으면 제법 위용을 갖춘 당당한 모습이겠다.
토성이었던 곳 바깥쪽은 석축을 쌓고, 안쪽은 토성을 더 보강한 느낌이다.
잔디를 새로 심은 게 줄지어 열을 이룬 게 보인다.
한때 떠들썩했을 무장읍 주변도 이젠 여느 시골과 다르지 않게 고즈넉한 편이다.
대도시 주변이 아니면 대부분 썰렁하고, 인구는 점점 감소하는 현실이다.
마을 주민들은 멀리 갈 것도 없이 무장읍성 성벽 돌기만 해도 은근히 운동이 되겠다.
시골이라 차량 통행도 많지 않아 공기도 좋은 편이다.
30여 분만에 진무루에 도착했으니 성벽은 잠깐 동안에 다 돌았다.
이곳 주변을 살피고 성안도 둘러볼 생각이다.
성 안쪽에서 보는 진무루
옹성에서 보는 남문
성 밖이다.
어딘가에 해자가 있었던 흔적이 있겠다.
이 진무루와 옹성은 복원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진무루 바깥 출입구
옛날 지도를 봐도 출입구는 동문과 남문 밖에 없다.
송사지관(松沙之館)이라고 쓴 편액이 내걸려 있다.
예전 지명인 무송과 장사 끝 자를 딴 이름이다.
읍취루는 손님을 맞고 연회를 하던 장소라고 한다.
벽이 없이 기둥만 있으니 연회 장소가 맞겠다.
여의주를 손에 든 용인가?
나뭇가지에 해가 걸렸으니 잠깐 내려가지 못할 때 얼른 탐방을 마쳐야겠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무장읍성의 역사를 대변하는 느낌이다.
취백당(翠白堂)은 ‘소나무처럼 푸르름을 간직하고 모래처럼 청백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라고 한다.
작은 연못
옥도 언젠가 복원할 계획인가 보다.
남한산성이나 금정산성은 산 위에 있어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금정산성은 민가는 물론 상점까지 즐비하다.
남한산성은 청나라와 전투에서 맥없이 무너져 임금이 머리를 찧어가며 항복한 곳이다.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순창의 낙안읍성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규모가 작은 고창읍성이나 무장읍성은 관아만 있다.
크기가 작아도 멋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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