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35
2021.9.21 (화) 추석 오후에 약 1시간 30분 탐방 맑음
영광 불갑산 등산은 사실 불갑사와 용천사의 꽃무릇을 보기 위함이다.
오전에 비가 그치자 시작한 등산은 사자봉에 못 미쳐 갑자기 돌풍과 함께 비까지 내려 당황했다.
이후 날은 점차 개 용천사 꽃무릇 탐방을 끝낼 땐 날이 거의 갰다.
불산산 등산을 끝내고 시간이 남아 영광군 관광지를 찾아보았으나 딱히 갈만 한 데가 없다.
내일 선운사 등산을 위해 고창읍에 도착하니 고창읍성이 지척이다.
고창읍성에 도착했을 때가 오후 5시라 해 지기 전까지 돌면 다 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오늘이 추석이라 3,000 원하는 입장료 없이 무료입장이다.
이렇게 예정에 없던 고창읍성을 입장료 없이 만나는 행운을 잡는다.
□ 고창읍성
고창읍성의 축성 연대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고창읍성의 관아 건물의 상량문과
각종 문헌 및 성돌에 새겨진 글자에 의하면 이 성은 조선 세종 32년(1450)부터 단종 원년(1453)까지
전라좌우도 19개 군·현에서 구간별로 분담하여 축성한 흔적이 성벽 구간마다 각자(刻字)되어 있다.
그중에는 무장시면(茂長始面)·무장종(茂長綜)이라는 흔적이 있으며,
동문 옹성 성벽에는 계유소축감동송지민(癸酉所築監董宋芝玟)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어서 이를 해석해 보면,
고창읍성이 계유년에 축조되었으며 무장현이 축성에 참여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고창읍성에 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고창현성곽조(高敞縣城郭條)에 처음 나타나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중종 25년(1530)에 간행했으나 단지 증보처에 신증이라는 두 글자만 표시하였으므로
성종 때 왕명에 의하여 김종직 등이 동국여지승람의 제2차 수정을 거쳐 탈고한 성종 17년(1484) 이전의
계유년으로 축성 연대가 압축된다.
무장현은 태종 17년(1417)에 무송현과 장사현을 통합하여 무장현이 되었으므로
계유소축의 계유년은 1417년 이후의 계유년이므로 고창읍성은 1453년의 계유년에 축성된 것이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고창읍성은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밟으면 병이 없이 오래 살고 저승길엔 극락문에 당도한다는 전설 때문에
매년 답성 행사가 계속되고 있다.
성 밟기는 저승문이 열리는 윤달에 밟아야 효험이 있다는데, 같은 윤달이라도 3월 윤달이 제일 좋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엿샛날이 저승문이 열리는 날이라고 하여 초엿새, 열엿새,
스무엿새 날에 답성 행렬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 승천한다고 한다.
성을 돌 때는 손바닥만 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세 번 돌아야 하고, 특정 지역에 그 돌을 쌓아두도록 하였다.
특히 윤삼월의 효험을 강조하는 것도 겨우내 부풀었던 성을 밟아 다지기 위함이었을 것이고,
머리에 돌을 이게 하는 것도 체중을 가중시켜 성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출처: 고성군청]
어른 3,000원 / 청소년 및 군인 2,000원 / 어린이 1,500원
오늘은 추석이라 무료입장이니 때 맞춰 잘 왔다.
고창으로 넘어가기 전 영관 녹산 사거리의 동산에 있는 선바위다.
드디어 고창읍성에 도착했다.
답성놀이상
이번에 고창읍성을 끝으로 서산 해미읍성, 순천 낙안읍성 등 우리나라 3대 읍성을 모두 탐방하게 된다.
해미읍성이나 낙안읍성은 거의 평지에 만든데 비해 고창읍성은 둔덕에 세워져 웅장한 느낌을 갖는다.
규모는 작으나 처음 볼 때 대단하다는 느낌을 먼저 받는다.
서산 해미읍성 보기
순천 낙안읍성 보기
성벽의 군기
고창읍성의 주 출입문에는 2층으로 된 공북루(拱北樓)가 있다.
공북루(拱北樓)는 바로 앞에는 적의 침입에 대비한 옹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돌로 만들어진 일반적인 성문과 달리 나무로 된 2층 누각에도 통로가 있다.
공북루에서 성벽으로 올라가는 길 옆의 옥
옥 창살
산 안에서 본 공북루
옥 옆으로 난 길을 통해 고창읍성을 시계방향으로 돈다.
옹성 위 공간과 깃발
이렇게 둔덕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어, 규모는 작아도 제법 옹골찬 읍성으로 느껴진다.
뒤돌아 본 공북루 방향
저기 보이는 돌출된 사각형은 치((雉)라고 한다.
치는 성에 접근하는 적을 3방향에서 공격하기 위해 성벽이 사각형으로 돌출된 곳이다.
3·1 운동 당시 1919.3.21 김승옥, 오동균, 김창규 등의 주도하에 고창 청년회원, 고창 보통학교 학생 등 200여 명이
이곳 읍성 북치에 모여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고창읍성엔 소나무와 대나무 군락지가 유명하다.
공북루처럼 옹성으로 둘러싸여 동문 '등양루(登陽樓)'가 보인다.
공북루와 거의 같은 형태로 지어졌다.
출입구
뒤돌아 본 등양루는 동문인 셈이다.
또 하나의 치를 지난다.
이렇게 우거진 소나무 숲을 지날 땐 가슴이 다 시원하다.
성벽 길과 성 밖 길
성 밖을 걸으려면 공북루 밖에서 걸어야 한다.
공북루를 포한해 3개의 문이 있으나 나머지 2 문은 닫혀있기 때문이다.
고창읍성의 마지막 세 번째 문인 진서루(鎭西樓)는 말 그대로 서쪽 문이다.
세 개의 문 모두 동일한 형태로 축성되었다.
성 높이는 길 따라 높이도 거의 일정하게 유지된다.
가까워진 진서루
옹성 안쪽
굳게 닫힌 진서루
진서루가 있다 보니 성벽이 제법 높게 쌓였다.
성벽은 대체로 좁은 편이다.
사람을 만나면 조심스럽게 비켜야 한다.
성을 한 바퀴 돌아 한 시간 만에 공북루에 도착한다.
이제부터는 성 안을 살펴볼 차례다.
대원군이 세계정세를 읽지 못해 쇄국정책을 고수하는 바람에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참 안타까운 과거의 일이다.
사각형 연못
현대에 들어와 배수로를 만든 건 잘한 일이다.
모양지관(객사)
고창읍성 안의 관청 등을 둘러보고 공북루 앞에서 나갈 준비를 한다.
옹성 내부 원형 성벽이라 외부 충격에 더 단단하겠다.
성벽 밖 진서루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고창현 비석군
역대 관찰사, 현감, 군수의 선정비를 모아놓은 곳이다.
철쭉꽃 폈을 때의 고창읍성은 또 이렇게 아름답다.
언제 와도 좋은 곳으로 이 사진은 고창군청에서 모셔왔다.
오전엔 비까지 내렸으나 해 질 녘의 오후엔 맑게 갰다.
영광 불갑산 산행에 이어 덤으로 받은 선물치고는 너무 좋다.
고창읍성을 끝으로 우리나라 3대 읍성을 다 돌아보았다.
고창에 들리면 선운사와 고창읍성은 꼭 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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