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_187
2023. 10. 13. 금요일 오후
아직도 돈대에서 뱅뱅거리고 있으니 진도가 영~ 안 나가는 느낌이다.
강화도를 다녀온 게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작성할 건 아직 네댓 개 더 남았다.
돈대를 두세 개씩 묶어서 작성해도 내내 같은 말만 반복하며 탈출하지 못하니 개미지옥에 빠진 느낌이다.
그냥 사진만 올리고 말어?
돈대를 다닐 땐 새로움에 마냥 신기했고, 찾아가는 재미도 있었는데...
선수돈대 船首墩臺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토 내 접경지역이나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설치하는 초소로 대개 높은 평지에 쌓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두는 시설물이다.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유수 윤이제가 해안 방어를 목적으로 함경• 황해 • 강원 3도의 승군 8,000명과 어영군
4,300여 명을 동원해 80일 동안 쌓은 48개의 돈대 중 하나이다.
동서 길이는 18m, 남북 길이는 32m로 평면 형태는 직사각형이다.
이 돈대의 북쪽으로는 굴암돈대가 있는데 이들 돈대는 영문營門에서 직접 관할했다.
Seonsudondae Outpost
An outpost, called dondae in Korean, was a small camp set up at a distance from a main military station.
It was used to monitor the enemies* movements and to stand guard against unauthorized intrusions
and surprise attacks.
In 1679, during the Joseon dynasty, 48 outposts were constructed in Ganghwado Island, and a local
magistrate, Yun I-je (1628-1701), oversaw the construction. Six additional outposts were built later.
These outposts were constructed on the coastal upland of Ganghwado, with artillery emplacement
surrounded by high stone walls.
The stone walls of Seonsudondae form a rectangle measuring 18 m in width by 32 m in length.
(안내문)
돈대의 출입구는 대부분 이런 평거식이고, 어쩌다 홍예문으로 된 게 보인다.
선수돈대(江華 船首激臺)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0호
강화군 화도면 내리 1831번지 마니산 서쪽 줄기 끝자락에 위치하며, 돈대의 아래로 선수포구가 있다.
바다를 향해 북향을 하고 있으며, 남북 간 32m, 동서 간 17m의 장방형 돈대로 포좌는 북벽에 2문, 동벽과
서벽에 각각 1문씩 총 4문을 배치하였고 출입문은 남벽 중앙에 냈다.
서남쪽 모서리 일부를 제외하고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조선 숙종 5년 (1679) 강화도에 축조된 48개의
돈대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숙종 22년(1696) 편찬된 『강도지(江都誌)』에는 돈대의 이름이 기록되고 있어
그 사이 어느 시기엔가 추가로 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곶보의 관할에 있었으며, 돈대 내부에 건물을 두어 창고와 수직(守直)하는 병사의 숙소로 삼았다.
(출처_한국고고학전문사전 성곽·봉수 편)
출입구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포를 두는 포좌가 2개, 좌우로 각각 하니씩 설치되었다.
선수돈대는 배의 모양을 닮은 듯 앞으로 길게 빼 앞쪽에 포좌를 두었기 때문에 배의 앞머리란 뜻인
선수船首 돈대라고 한 걸까?
돈대 안은 낮아 보여도 밖에서 보는 돈대는 제법 높게 보인다.
안쪽을 높여야 위에서 조망하거나 대포를 쏠 때 방향을 잡기 편하다.
선수포구는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느낌이다.
포구 바깥쪽은 포신이 걸리지 않고 이동하기 쉽게 상하좌우를 곡선으로 처리했다.
사실, 강화대교에서 시계방향으로 이동하며 선수돈대 입구를 찾는 게 어려웠다.
반대로 돌면 입구를 바로 만날 수 있지만, 시계방향으로 돌면 커브를 다 돌며 자세히 봐야 입구를 알 수 있다.
후포항의 밴댕이마을로 내려가는 입구에 갓길에 넓어 이곳에 주차하고 다녀오면 된다.
굴암돈대 屈岩墩臺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토 내 접경지역이나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설치하는 초소로, 대개 높은 평지에 쌓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두는 시설이다.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유수 윤이제가 해안 방어를 목적으로 함경• 황해 • 강원 3도의 승군 8,000명과
어영군 4,300여 명을 동원해 80일 동안 쌓은 48개의 돈대 중 하나로 진무영鎭撫營 직할의 영문營門 소속 돈대이다.
높이 3m, 둘레 70m의 타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대포를 올려놓는 포좌를 4곳에 설치하였다.
돈대 위에는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하기 위해 덧쌓은 낮은 담장을 두른 흔적이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Guramdondae Outpost
An outpost, called dondae in Korean, was a small camp set up at a distance from a main military station. It was used to monitor the enemies movements and to stand guard against unauthorized intrusions and surprise attacks.
In 1679, during the Joseon dynasty, 48 outposts were constructed in Ganghwado island, and a local magistrate, Yun I-je (1628-1701). oversaw the construction. Six additional outposts were built later. These outposts were constructed on the coastal upland of Ganghwado, with artillerv emplacement surrounded by high stone walls.
Guramdondae has four artillery emplacements, and its stone walls form a semi-circle shape measuring 3 m in height. The circular section of the outpost is approximately 70 m in lenath. There are traces of low walls above the main structure which shielded soldiers during battle.
(안내문)
굴암돈대(江華 屈巖徵臺)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9호. 강화군 양도면하일리 산 98번지
하일부락 뒷산 바닷가에 위치한다. 석벽의 하단 이 정돈되어 있는 반면 상단이 조잡한 편이다.
돈대는 진강산 서상면의 끝자락인 하우고개 서편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돈대의 남쪽에는 조선시대 간척을 위해 쌓은 가통제방이 있고 그 끝으로 선수포구가 위치한다.
인근 건평돈대와 내리 소재 송강돈대에 대응하여 교차사격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돈대는 바다 쪽을 향해 서향의 반원 형태를 띠고 있으며, 직선인 동면 남북 간 거리가 40m로
반원을 이루고 있는 동서 간 직선거리는 28m이다. 외측의 높이는 1.3~4.6m, 내측의 높이는 0.7m
내외로 일정치 않다.
돈대의 동벽에 출입할 수 있는 문을 두었으며 서벽 전면에 4좌의 포좌를 방사형으로 배치하였다.
포탄 등을 수납할 수 있는 포좌 내부의 이방(耳房)은 없다. 북벽의 중앙으로 돈대의 배수를 위한
누조(漏槽)를 설치하였다. 석벽 위로 36개의 성첩(城堞)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조선 숙종 4년(1678) 강화도 해안에 48개의 돈대를 축조하자는 병조판서 김석주의 건의에 따라 그 해
12월 강화도 마니산과 별립산 등에서 돈대 건립에 사용할 석재를 채석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당초 돈대의 형태를 원형으로 계획하였으나, 공사과정에서 반원형으로 변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채취한 석재는 생칡으로 묶어 수레와 배로 운반하였다. 운반된 석재를 다시 다듬은 뒤에 녹로(轆轤)를
이용하여 층층이 쌓아 올렸는데 이때 석축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소나무 메를 이용하여 다져가며 쌓았다.
체성(體城)의 축조를 완료한 뒤 성첩을 조성하였는데 석모도에서 채취한 박석(薄石)을 석회로 붙여가면서
쌓아 올렸다. 돈대에 설치한 문은 판자로 틀을 짠 뒤에 박철(朴鐵)을 대어 만들어 붙였다.
굴암돈대는 당초 진무영에서 직접 관할하다가 후에 송강돈대 별장에게 잠시 소속되었다가 다시 영문(營門)으로
이속되었으며, 돈대 내부에 건물을 두어 창고와 수직(守直)하는 병사의 숙소로 삼았다.
(출처_한국고고학전문사전 성곽·봉수 편)
출입구를 중심으로 반원형인 굴암돈대는 정면에 포좌 4 개를 방사형으로 설치했다.
해안 쪽에서 바라보는 출입구
정면에 포좌 4개가 모두 드러났다.
이 포좌의 상단은 밖으로 노출되었는데 위에 있는 공간으로 적의 동태를 살필 수 있다.
밖에서 보면 반원형은 D 자 형으로 보인다.
포좌의 윗부분은 이렇게 노출되어 밖을 잘 조망할 수 있는 구조이다.
굴암돈대는 이렇게 해안가에 설치되었다.
최근에 복원한 듯 성돌은 아직 색이 바래지 않았다.
배수를 위한 누조로 돈대 안이 살짝 보인다.
이 누조는 밖으로 약 10cm 정도를 돌출시켜 빗물이 돈대에 스며들지 않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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