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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과 읍성 탐방/산성·읍성·진·보·돈대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보령의 남포읍성

by 즐풍 2022.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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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7.10 (일) 40분 탐방

 

 

언제부턴가 산성과 읍성에 점차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둘 찾아다니며 우리 조상은 늘 중국, 몽골과 왜구의 침입까지 하루라도 편할 날이 없었겠단 생각이 든다.

특히 벼농사가 잘 되는 호남평야를 중심으로 한 전라도와 충청지역의 해안은 왜구의 주요 타깃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과 삼도수군의 통제영으로 있으며 이 지역을 단단히 지켜냈다.

그 외에는 고려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왜구들의 노략질이 끊이지 않은 지역이었다.

우리는 나름대로 이에 대한 방비로 읍성을 쌓아 유사시 읍성으로 피난하며 저들과 싸워야 했다.

이러한 읍성은 순천의 낙안읍성, 고창의 고창읍성, 서산의 해미읍성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이들 3대 읍성은 그래도 규모가 커 읍성에 관아와 민가가 있어 이곳에서 살아가기도 했다.

 

읍성뿐만 아니라 산성도 마찬가지다.

북한산성이나 남한산성, 금정산성은 산에 쌓은 산성으로 이곳도 제법 규모가 커 사람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북한산성은 일제강점기인 1900년대 초 을유년 홍수 때 행궁이 다 쓸려나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2000년 초 산성에 있던 상가를 전부 수용하며 깨끗이 정리해 지금은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조선 정조 때는 정약용이 설계한 대로 수원 화성을 만든 게 요즘 말로 하면 제2의 정부청사이자 신도시인 셈이다.

수원화성은 비교적 많은 부분이 온전한 형태로 남았지만, 서울의 한양도성은 대부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만 북악산과 인왕산, 남산, 북한산성 외성을 연결하는 일부 산악에 제법 긴 형태로 성벽이 존재한다.

이렇게 시민들과 가까운 곳의 읍성이나 산성은 이제 관광지로 변신하며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오늘은 충남 보령에 있는 남포읍성과 보령읍성, 충청수영성 등 세 곳 중 남포읍성부터 탐방한다.

남포읍성은 포(浦)에서 유추할 수 있듯 바닷가에 있는 성이라 생각했는데, 바다와 약 7km 정도 떨어져 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살펴봤더니 보령시 대천항 남쪽에 있는 포구라 하여 남포면이란 행정구역 안의 성이다.

고려 말에 남포읍성은 수령이 근무하는 관아가 있었는지 이곳에 읍성을 쌓은 것이다.

이 읍성의 절반은 지금 남포초등학교가 자리를 깔고 들어앉아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를 키우고 있다.

 

 

 

남포읍성으로 들어간 이 성문은 반 원형의 옹성을 두른 서문이다.

차량 통행을 위해 옹성은 철거된 것으로 보이고, 입구는 차량 통행을 위해 헐린 느낌을 준다.

서문 뒤애 주차하고 성벽 위로 올라가 반 시계방향으로 성을 탐방한다.

 

성벽 밖은 돌로 잘 쌓았고 안쪽은 토성으로 만든 구조다.

성 안은 농지와 남포초등학교 그리고 관아가 남아 있다.

 

도심에 있는 읍성이 아니므로 성벽은 대체로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관광객도 거의 찾지 않는 읍성이라 별로 관리하지 않는 느낌이다. 

 

읍성 주변으로 소나무 등의 고목이 많아 유서 깊은 곳이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성벽 높이는 대략 3~4m 정도로 짜임새 있게 잘 쌓은 성벽이다.

 

귀퉁이엔 치성(雉城)으로 돌출시켜 적의 동태를 살피고 공격하기 좋게 만들었다.

 

이 소나무는 성 안에 있기가 너무 외로웠나 보다. 

팔을 뻗어 나가려고 애쓰지만 가능키나 한 일인가.

 

 

 

읍성 북쪽을 차지한 관아는 오래전 남포초등학교가 들어서며 담장으로 경계를 세웠다.

 

관아가 들어선 곳이라 제법 정돈된 느낌을 준다.

 

관아를 감싸며 도는 이곳에도 어김없이 나타난 치성(雉城)

 

관아는 동헌만 남은 상태다.

 

성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

 

동문과 서문으로 차량이 통행하는 길을 냈다.

파란 천막은 옹성이 비에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뒤집어 씌웠다.

 

볕이 잘 드는 동쪽 성벽 역시 잘 자란 소나무가 성벽의 고풍스러움을 더해 준다.

 

반듯한 성벽이 무너진 이곳은 칡덩굴이며 이름 모를 잡초가 뒤덮었다.

 

멀리 동문을 감싼 옹성 일부가 천막 밑으로 드러난 게 보인다.

 

아무리 잘 쌓은 성벽이라도 관리가 안되면 무너지게 되어 있다.

임오군란 이후 조선의 군은 궤멸되고 일제의 훈련을 받은 신식군대가 군을 접수한다.

더 이상 산성이나 읍성을 지킬 이유가 없어지면서 성은 방치되면서 그 기능을 잃었다.

이렇게 천막으로라도 가린 걸 보면 곧 보수공사도 이루어진다는 걸 의미하겠다.

 

이곳 성벽도 대체로 잘 보존된 상태다.

 

잡초가 우거진 남쪽 성벽의 일부

 

우측으로 잘려 나간 곳이 남문 통로다.

이른 아침이라 남쪽 성벽엔 아직 햇살이 들이 않았다. 

 

이곳은 다소 들쑥날쑥한 형태를 보이지만 여전히 굳건하게 버틴다.

 

 

 

남문을 통해 성벽 위로 올라왔다.

안쪽으로 토성을 쌓아 성벽을 보강한 형태다.

 

일제강점기에 초등학교를 세우며 부지가 마땅치 않자 읍성에 세운 학교가 전국에 제법 많다.

 

남포초등학교 담장을 끼고 난 도로를 따라 관아에 도착했다.

관아로 들어가는 외문이다.

 

관아의 정자에 속하는 진서루

 

서문 밖에서 보는 성곽

 

 

 

이곳을 거쳐 간 현감의 공덕비

 

관아 마당에 있는 나무

 

옥산아문 편액

 

 

 

 

보령에 있는 읍성 여행의 첫 방문지인 남포읍성을 둘러봤다.

전체 둘레 라야 900여 m에 남짓한 작은 읍성이다.

500여 년을 넘게 견디며 이 지역을 지켜주는 방패 역할을 다했을 것으로 본다.

보존 상태가 비교적 좋은 편이나 일부 구간의 무너진 곳은 보수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