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9.14. 토 오후 마지막 타임 맑음
우도 본편 마지막 장이다.
해안선따라 꼭 18km 걷는 구간 중 마지막 코스다.
목우와 딸아이는 우도가 두 번째인데다 오전부터 내내 걸었기에 종주하기 힘든건지 아니면 더 이상 볼게 별로 없다는 걸 알았는지
하고수동해변에서 바로 하우목동항으로 이동하겠다고 한다.
지치지 않는, 아니 지친 표를 안 낼뿐인 나는 해안선을 따라 우도를 종주하기로 하고 헤어져 혼자 걷는다.
지금까지 그들의 보조에 맞췄으나, 사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진찍는다고 지체되기 일쑤인 나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들은 그들대로 난 나대로 걸리적 거림없이 걸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이른바 윈윈의 시작이다.
이제부터 아무 생각없이 걷는 게 제일 좋고, 다음은 풍경과 주변에 도취돼 여행 그 자체를 즐기는 것도 좋다.
우도 지도를 보면 우도 8경은 지도 아래쪽에 위치하고 하고수동해변에서 하우목동항을 연결선으로 그 위는 별로 볼게 없다.
그러니 걸으며 우도를 즐길 생각이라면 반 시계방향으로 돌아 하고수동해변을 끝으로 목동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전기차로 이동한다면 별로 노고가 필요 없으니 해안선 전체를 돌며 즐기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나는 새로운 호기심을 안고 또 어떤 풍경이 나를 이끌지 잔뜩 기대를 갖고 또 걷는다.
하고수동해변에서도 여전히 조망되는 비양도
환해장성(環海長城)
환해장성은 제주 전역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축 성곽으로 제주도 해안선 300여 리(약 120km)에 쌓여진 석성을 말한다.
1998년 1월 7일 제주도 기념물 제 49호로 지정되었다.
고려 원종(元宗) 11년(1270년) 원(元)과의 강화를 반대하며 진도 용장산성을 거점으로 한반도 육지부 서남해 일대에서
대몽항쟁을 전개했던 삼별초가 제주로 들어가는 것을 방어하기 위하여 고려 조정이 영암부사 고려와 고여림 장군을 보내어 쌓은 것이 그 시초다.
이후 삼별초에 의해 제주가 점령된 뒤에는 삼별초가 이어받아 사용하였다.
삼별초 멸망 뒤 왜구의 침입과 이양선의 출몰에 대비하여 조선 말기까지 꾸준히 지속적으로 정비되었다. (위키백과)
시간이 많은 이들은 해변으로 들어가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해안선은 별 특징없이 이어진다. 그래도 뭔가 볼게 있을 거란 믿음은 있다.
왼쪽에 제주 소품관과 오른쪽에 인어공주 촬영장소가 보인다.
여기도 환해장성이다.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드라마를 본다는 게 고역이라 인어공주 역시 내용을 알지 못한다.
이곳에 인어공주 조형물을 만든 걸 보면 인어공주가 제법 히트작인 모양이다.
어, 원래 해녀 탈의장이란 말씀
망루등대
봉수대와 망루등대가 제법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포기했다면 놓쳤을 풍경이다.
땅콩 모양의 해안 분지다.
우도 땅콩의 맛은 여기서 비롯된다.
무슨 명물인지 돌로 둑을 가지런히 쌓은 게 보인다.
제법 그림이 좋은지 오가는 사람이 다 모여들어 사진을 찍는다.
망루 겸 봉수대(烽燧臺)
봉수는 봉(횃불)과 수(연기)라는 의미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조선시대의 군사 통신시설이다.
군사목적으로 봉수를 사용한 것으로 고려시대부터라고 기록에 전해진다.
제주에서 봉수시설이 체계적으로 정비되어 본격적으로 군사적 통신시설로 사용 된 것은 조선 세종때로 본다.
봉수는 1895년 봉수제가 폐지 될 때까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군사적 통신수단이었다.
우도에서는 망루라고 하여 5인 1조로 근무했다고 한다. (안내문)
이런 돌탑이 모이고 모여 제주 풍경을 더 멋지고 아름답게 가꾼다.
저런 돌탑이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작은 원동력이다.
방사탑
방사탑은 마을의 재앙과 무사안녕을 기원하고 액운을 막기 위해 세웠다.
보통 2기가 한 조이며 북쪽 향 하르방탑(남) 남쪽 방향 할망탑(여)로 구성되며 현무암으로 쌓는다.
꼭대기 새의 형상은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액운을 쪼아 없애 달라는 소원을 담고 있다.
방사탑 쌓을 때 밥주걱과 솥을 묻는다.
밥주걱은 외부의 재물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라는 소망을 의미한다.
솥은 불에도 강하기 때문에 마을의 재난을 막아 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안내문)
드디어 정북 방향인 12시(자시: 자정)가르키는 쥐가 놓였다.
정점을 찍었다고 하지만, 여기서도 하우목동항까지 터벅터벅 2.6km를 걸어야 한다.
등대망루와 머잖은 곳에 물들이동산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공간이나 바람개비와 의자를 설치가 또 다른 명소가 된다.
형형색색의 바람개비는 짙푸른 바다와 어울려 사진 촬영의 명소로 변신 중이다.
더 멀리 더 은밀하게
옛집을 멸실하며 남은 벽 하나를 색칠하고 물고기를 그려 넣어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벽 하나에 작은 정성을 쏟아부어 작품을 만든 그분의 노고가 우도를 변화시킨다.
가까우면 가까운 데로 멀면 먼데로 근사한 풍경이 된다.
제주는 어디든 흔하고 흔한 게 돌이다.
밭을 일구며 가득한 돌을 걷어내 돌담을 만들어 소유 경계를 짓고 밭갈기 더 수월해지니 일석이조다.
공터엔 미역을 말리기도 하고...
힘 없는 미물이 자신을 거세시킨 영감의 고환을 물고 늘어져 똑같이 복수했다는 슬픈 이야기다.
마을로 들어온 해수 저수지가 낚시터가 되었다.
담수어가 아닌 바다 물고기를 낚아볼까?
여기도 돈짓당이 있고...
해변에 이렇게 포구가 있어야 배를 댈 수 있어 어업활동이 가능하다.
이런 포구가 없으면 배를 살 필요가 없어 농어민으로 살아가야 하니 그만큼 소득을 올릴 수 없다.
이쪽엔 승마장이 있고...
돌이 많은 제주는 돌로 덮혀져 있어 돌섬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러한 돌은 검고 구멍이 송송한 현무암(玄武嚴)으로서 도처에 깔려 있다.
제주도민은 예로부터 무수한 바윗돌올 쪼개고 제거하며 밭을 일구었다.
그 무수한 돌을 캐내고 쪼개고 하는 가운데 제주도의 자연 환경에 적응 할 수 있는 지혜를 일깨웠다.
선인들은 이 돌을 이용하여 밭을 에워 싸 바람과 물로 인한 토양의 유실을 막고
방목(放牧)된 우마(牛馬)의 침입으로부터 농작물의 피해를 막았다.
뿐만 아니라 가옥의 외벽이나 울타리의 담장, 목야지(牧野地)의 담장은 물론이고
묘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돌담으로 되어 있으며 지금도 이러한 방법은 계속된다. (성산리 홈페이지 인용)
우도 여행객에게 렌트할 전기차가 즐비하다.
제주는 청정한 공기를 만들기 위해 전국에서 제일 많은 전기차가 보급돼 전기충전소도 제일 많다.
참 좋은 정책이다.
18km를 걸으며 우도 한 바퀴 돌아 일곱 시간 40분만에 하우목동항에 도착했다.
먼저 와 기다리던 목우와 아이를 데리고 5분 후 4시에 출발하는 성산포행 배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서두른다.
다음 배는 한 시간 더 기다려야 하는데, 마침맞게 도착해 조금의 여유도 없이 알뜰하게 우도 여행을 끝냈다.
제주 올레 종주 때 한 번 더 들려야 하는 우도 여행을 이렇게 끝낸다.
'■ 지역별 탐방 > 제주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를 피해 들어간 비자림 (0) | 2020.01.23 |
---|---|
아이폰으로 담은 오설록 티뮤지엄 (0) | 2020.01.19 |
우도의 섬 비양도 (0) | 2020.01.19 |
우도 하고수동해변의 아름다움 (0) | 2020.01.19 |
우도 하고수동해변 가는 길 (0) | 2020.01.19 |
우도 검멀레해수욕장 (0) | 2020.01.19 |
우도 먹돌해안과 톨칸이해변 (0) | 2020.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