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25. 목(연가) 11:40~16:00(이동 거리 10.61km, 이동 시간 04:20, 휴식 시간 26분, 평균 속도 2.7km) -16℃ 맑음
만 4년 만에 방문하는 태백산이다.
올겨울 강원도 지역은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어도 워낙 추운 지역이니 산 위엔 아직 눈이 남아 있다.
겨울에 들어서며 한파가 극성이더니 정작 한겨울엔 한파도 다소 주춤했다.
그러다가 이번 주 초부터 극한의 한파가 밀려오기에 태백산에 오면 상고대를 볼 수 있겠단 생각으로 다시 찾는다.
뭐, 상고대가 없으면 태백산 눈꽃축제라도 볼 수 있을 테니 꿩 대신 닭을 맛볼 기회가 있는 셈이다.
태백산 날씨 예보를 보니 최저 기온 -19℃에 최고 -16℃, 초속 14m의 매서운 서풍이 분다니 참을 수 없는 겨울 날씨다.
화요일 오후에 태백산국립공원에 전화하니 전날 눈이 내려 상고대가 관측된다고 한다.
이후 수요일부터 25% 전후로 형성된 습도는 오늘까지 큰 변동 없이 이어졌다.
이런 추위에 습도 60% 이상 넘겨야 바람에 실린 습기가 나뭇가지에 얼어붙어 멋진 상고대를 보여줄 텐데, 다소 아쉽다.
워낙 추운 날씨라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OR 방한모와 벙어리장갑, 버프 속에 찰 마스크와 핫팩을 지참한다.
매주 신사동으로 나가 산악회 버스를 타고 지방 산행을 나섰는데, 모처럼 일산에서 출발하는 산악회를 이용한다.
신사동으로 나가려면 보통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일산에서 출발하면 20여 분이면 충분하다.
보통 3~4주 전부터 모객이 시작되는데, 워낙 인기가 좋다 보니 삽시간에 만차가 되어 사실 이용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기상청 일기예보가 보통 1주일 정도가 제공되다 보니 주초나 되어야 주말 날씨를 보고 산행지를 선택한다.
이번에도 진작 만차가 됐으나 너무 추운 날씨 탓인지 취소자가 생겨 그 틈을 비집고 버스에 오른다.
태백산 등산코스
백석역에서 7:20에 출발하여 유일사 주차장에 11:32에 도착했다. 꼭 네 시간 10분이 걸린 강원도 오지다.
유일사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그냥 올라가려는 데, 안내실에서 문을 열고 "초입부터 미끄러우니 아이젠을 착용하라"고 한다.
버스에서 내려 잠깐 20여 m를 걸었을 뿐인데, 등이 후끈거리며 땀이 날듯 덥다.
어제 오늘이 올겨울 들어 가장 춥다고 핀란드에서 생산된 '인진지'라는 고소 내의를 입은 데다, 800 필파워 구스잠바를 입은 결과다.
구스다운을 벗고 보온재킷으로 갈아입은 뒤 아이젠을 착용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눈이 그렇게 많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동안 내렸던 눈이 워낙 추운 지역이라 대부분 그냥 쌓인 느낌이다.
한참을 걸어 길가에서, 더 정확히는 유일사로 내려가는 길목을 약 80여 m 앞두고 처음으로 주목나무를 만난다.
그동안 태백산을 예닐곱 번 정도 다녔어도 오늘 처음으로 유일사에 내려왔다.
대웅전을 대신해 무량수전이 자리잡고 있다. 뒤로는 태백산에서 좀체 보기 힘든 암봉이 보이기도 한다.
그동안 무심한 눈길로 바라만 봤던 유일사를 처음으로 보게 되어 마음의 빚을 던 느낌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태백산이 자랑하는 주목나무 숲에 들어선다.
지난 월요일 눈이 내리고 화요일과 어제 수요일까지 상고대가 좋았다는 데, 오늘은 워낙 습도가 낮아 상고대는 구경도 못한다.
이런 주목나무에 상고대가 허옇게 내려앉기를 기대했으나 희망에 불과했다.
대한민국 어느 산을 가봐도 태백산 만큼 주목의 위풍이 당당한 곳도 그리 많지않다.
지금은 비록 반목불수로 그 생명이 꺼져가고 있으나 가지의 형태만 보아도 지난날의 위풍당당함은 여전해 보인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란 말을 이런 주목을 보며 실감한다.
처음 유일사 아래쪽 길목의 주목은 거칠게 없이 컸는데, 이곳만 해도 바람이 거칠어 주목은 옆으로 가지를 뻗치며 자란다.
바람에 납작 엎드리며 자연에 순응하는 나무의 지혜가 돋보인다.
바람에 저항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춤사위를 보는 느낌이다.
나무끼리 저들만의 언어로 소통해왔을 오랜 기간을 지나고 이제 고목과 더 이상 소통을 못하니 좀 더 멀리 있는 나무와 더 큰 언어로 소통을 해야 할 텐데...
백두대간의 중앙에 위치한 태백산의 장군봉 정상에 마련된 장군단
태백산엔 장군봉, 천왕단, 천제단 등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설치된 제단이 세 개나 있다.
태백산 정상이라는 장군봉
장군봉 표지석 보다 300m 건너편에 있는 천왕단 앞에 있는 태백산 표지석이 더 크고 우람하여 인기가 많다.
건너편 천왕단으로 이동해 보자.
천왕단으로 가며 뒤돌아 본 장군봉 방향의 평원
이 고위평탄면에 연분홍 철쭉이 깔려 늦봄엔 철쭉제가 열린다. 워낙 바람이 거칠어 철쭉의 절반은 피지도 못한다고 한다.
드디어 천왕단에 도착했다.
장군봉의 장군단이 사각인데 비해 천왕단은 원형 형태라 디자인이나 완성도가 더 높아 보인다.
산 정상에 이렇게 큰 제단이 있는 곳은 태백산 밖에 없다. 개천절에는 이곳에서 제사를 받든다고 한다.
주말이면 인증사진을 찍겠다고 긴 줄이 이어질 텐데, 주중인데다 날씨가 춥다 보니 잠시 서너 명씩 붐빌 뿐 이내 적막이 흐른다.
등산객 대부분은 천왕단에서 단군성전이 있는 만덕사를 지나 반재로 통과하여 당골로 하산한다.
나는 4년 전과 마찬가지로 문수봉과 소문수봉으로 종주할 생각에 방향을 바꾼다.
천제단에서 약 300여 m를 내려오면 이름이 없어 하단으로 불리는 제단이 하나 더 있다.
이 제단까지 합쳐 총 3개의 제단이 있는 것이다.
다정한 부부 주목으로 불렸을 주목 한 쌍이 나이도 많지 않은 데 요절하는 건 아니가 싶다.
문수봉으로 가는 길, 아니 부쇠봉에 훨씬 못미쳐 있는 마지막으로 멋진 주목을 본다.
한참 때는 오가는 산객의 쉼터가 되며 그늘을 만들었을 큰 가지도 어느새 사라지고 이제 조금 남은 가지가 여전히 주목임을 알리고 있다.
태백산에서 드물게 보이는 구상나무다.
위쪽에 있던 주목나무 보다 고도가 낮어서인지 키를 굽히지 않고 바르게 올라가며 뻗은 나뭇가지가 시원해 보인다.
가야할 문수봉
거제수나무가 꼭 자작나무처럼 보인다.
문수봉
문수봉엔 크고 작은 돌탑이 여러 개 세워져 있다.
조국의 통일을 위한 건지 나라의 안녕을 비는 건지 모르지만, 제법 조밀하게 잘 만들었다.
꼭 제주의 방사탑 같은 느낌이다.
건너편 함백산 정상
소문수봉
소문수봉을 끝으로 본격적인 하산길에 접어든다.
워낙 춥다 보니 점심 먹는 시간 외엔 어디 앉기도 겁나 쉬고 싶다는 생각은 많아도 내쳐 하산하고 만다.
그러니 이렇게 추운 날엔 산행 시간이 빨라질 수밖에 없다.
그 크고 두툼했던 나무도 양쪽으로 가늘게 남은 몸체로 겨우 지탱하고 있다.
가운데 몸체는 이미 허공에 뜬 상태라 긴 세월 이곳을 지켜오던 나무도 태풍 한 번 지나가면 쓰러지고 말리라.
당골 눈꽃축제장에 도착했을 때가 16:00다.
제일 긴 코스로 돌 때 여섯 시간이 주어졌지만, 워낙 춥다 보니 한 시간 20분 빨리 하산했다.
눈꽃축제라고 하지만, 워낙 규모가 작아 눈길 한 번이면 끝날 만큼 작품은 많지 않다.
그래도 연인이나 가족끼리 이 시간에도 제법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았다.
하얼빈의 거대한 빙설제를 여러 사진이나 TV 화면으로 보던 것과 비교하면 어림없지만, 그래도 이런 것마저 없으면 어찌할 뻔 했을까.
멧새소리 - 백석 -
처마 긑에 명태明太를 말린다
명태明太는 꽁꽁 얼었다
명태明太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고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明太다
문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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